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2017.09.07 09:43

상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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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스쿨버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주제별로 묶어진 일종에 학습만화, 학습그림책이겠네요. 예전에 수업 하려고 필요한 자료를 모으다 우연히 발견한 책입니다. 읽기에 빠져 저도 모르게, 할 일 뒤로 미루고 한 참 빠져 읽었습니다. 아이들과 두서 없이 이야기 나누다 함께 알아보고 싶은 주제가 나오면 교실이 스쿨버스로 바뀌고 교실이 그대로 그 주제에 어울리는 곳으로 움직입니다. 바다 속으로, 우주 속으로 또는 사람 몸 안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사람을 만나러 가기도 하고요, 옛 사람인 경우 타임머신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운전사가 되고, 현장에서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 내고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서 즐거운 상상을 했더랬습니다. 이후 아이들 만나면서 갇힌 교실에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나누다 저도 모르게 교실이 버스로 바뀌는 상상 혼자 하면서 빙긋 웃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 고장을 주제로 아이들과 나눌 때면 눈에 보이는 산 위에 훌쩍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는 교실이면 좋겠다, 교실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것처럼 투명 엘리베이터가 되어 높이 올랐으면 좋겠다, 옛 사람을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 하면서 말이죠. 주어진 현실 앞으로 바로 내려오지만 상상할 때만큼은 참 재미납니다.

내려온 현실에선 답답함을 많이 느낍니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국가교육과정' 이란 게 있습니다. 나이 마다 꼭 배워야 할, 익혀야 할 것들을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공립학교 선생들은 여기에 맞춰 움직여야 합니다. 조금의 재량이 주어지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엇나가기라도 할라치면 제지를 받습니다. 기준이 정해져 있고 준비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아이들을 꿰어 맞추는 것이죠. 공장에서 뽑아내는 물건도 아닌 사람을 어떤 기준에 맞춘다는 건 어쩌면 '폭력'입니다.

모두 아는 얘기지만, 아이마다 다릅니다. 얼굴 생김새 다르듯 좋아하는 것, 호기심 가지는 곳, 더 많이 하고 싶은 것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오늘은 이거 해야 해." 하면서 자리에 앉아 있길 강요하고, 언젠가 써 먹을 거라면서 꼬시기도 하고, 같이 하는 주제에 들어오지 않으면 않는다고, 시작한 주제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다른 주제로 옮겨가지 않으면 옮겨가지 않는다고 타박합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는 먼저 배우고 싶은 욕구에서 와야 합니다. 삶을 살아가다 '이거 배우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면 스승을 찾아 배우는 것입니다. 스승이 보기에 배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많은 이를 단시간에 사회와 국가에 쓸모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학교'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학교라는 곳이 생겨 평등하게, 공평하게, 차별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놓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 가르치는 사람이 나타나고 그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 '교육'입니다. 배우고 싶지 않은데, 배울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데 정해진 시간 동안 무조건 가르쳐야 하고, 배워내야 하는 시스템에서 교육의 본질을 찾기는 참 어렵습니다.

사회적으로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것이 모두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큰 예로 일정한 기준을 정해 두고 사람을 선발합니다. 이것은 교육이 아닙니다. 쓸모 있는 사람을 가려 뽑아내는 게 교육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요. 학교라는 사회적 기관이 수행하는 기능의 대부분이 선발기능입니다. 교육이 아닙니다.  사람 마다 가지는 여러 가치로움을 더 가치롭게 하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잣대를 들이대고 수준미달, 수준초과 하는 게 교육이라고 말하면 안 되겠지요.

꿈꾸는 학교, 교실에 대해 소박한 상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 내려놓을 때가 많습니다. 저는 작고 힘 없는 선생일 뿐이고 교실 밖까지 어떻게 해 볼 수 없습니다. 돌고 돌다 우연히 만난 아이들이고 학교입니다. 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시간입니다. 시간과 사람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고 찬찬히 걸어가면 뭔가 잡히려나요. 이십 년 해 마다 아이들 만나며 여러 생각해 봅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게 교육일까 하면서 되돌아 봅니다. 몽실몽실 이 생각, 저 생각 해 보기도 하지만 잘 잡히지 않는 게 '교육'이라는 낱말입니다.

그래도 상상은 재밌습니다. 허무맹랑한 상상이라도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만들어보려고 하면 그 속에서 생겨나는 이야기가 생기 넘칩니다. 잡히지도 않고 앞뒤 없지만 어느 사이 내 앞에 펼쳐집니다. 이게 바로 상상의 힘이겠지요.  

내일 온작품으로 '조커, 학교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를 나눕니다. 창 밖으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읽었습니다. 또 다시 저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책 나누며 아이들의 학교 이야기, 교실 이야기 많이 들어봐야겠어요. 아이들의 새록새록한 목소리 만나면 더 많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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