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오래된 미래

by 애숙거사 posted Sep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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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오래된 미래

동시 같은 한시가 참 많아요!

 

울산 명덕초 교사 백태명

 

 

지난여름 연수에서 이안 시인의 동시 강좌에 연수생들이 몰렸다. 세계에서 시집이 팔리는 유일한 나라이고, 인구 비율로 시인이 가장 많다는 우리나라에서도 현대시는 어렵고 아리송해 외면 받고 있지 않은가? 동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까닭을 알 수 없지만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세 동아시아한문문명권에서 과거시험으로 인재를 뽑은 것은 획기적인 조처였다. 고대그리스 플라톤의 저작에서 철인(哲人)이 통치하는 사회를 상상했는데, 철학자를 문학인으로 바꾸어 실현한 것이다. 과거제도에서 시를 중요하게 여겼던 까닭을 조동일 교수께 문의했더니 아래와 같이 응답을 했다.

 

 “시는 글쓰기의 최고 형태이고, 사고력, 판단력, 품성, 감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최상의 시험방식이라고 여겼습니다. 종합적 능력을 갖추고 훌륭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인재라고 하는 것이 근대와는 다른 중세의 척도였습니다. 실무지식은 하위의 것으로 여겨 중인에게 맡겼습니다.

  과거를 볼 때 경전 이해, 策이라는 이름의 정책문답 산문 글쓰기도 시험하는 데 그치지 않고, 科詩, 科賦라고 하는 시 형태를 더욱 중요시한 것이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대에는 중인이 하던 공부를 해야 출세를 할 수 있게 되어 지성의 타락을 겪었습니다. 시를 외면하는 기술자, 법조인, 행정가, 정치인이 이끌어나가는 오늘날의 사회는 가치관의 위기, 인간성의 황폐화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 수양을 멀리하고 몸만 꾸미고 있지 않은가? 물질생활의 풍요를 끝까지 추구하다 인류 존망의 위기를 맞이한 것은 아닌가? 근대 유럽문명권이 주도해온 시대가 물러나고 다른 문명권에서 다음시대를 열어가야 하지 않을까?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며 독서의 방향이 달라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또 유럽의 인문학과 근대의 민족어가 해결의 당사자로 나서서는 곤란하다. 유럽의 인문학은 근대를 수행하는데 에너지를 다 소진했고, 국문만으로는 사상의 내용과 분량이 적어 다음시대를 헤쳐갈 에너지원으로 힘이 부족하다. 그래서 동아시아 중세 고전과 공동문어인 한문을 다시 살려 써야 한다. 중세 고전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바로 한시이다. 한시는 문사철의 총화이며 형식이 뚜렷해 이해하기 쉽고 번역하며 우리 말 시로 다듬는 과정 자체가 창조의 경험이다.

 

담임선생이 한시를 가르치는데 의문을 가진 5학년 여학생이 조동일 교수께 “한시는 왜 중요한가요?” 하고 여쭈어보았다. 조동일 교수는 “한시는 동시대 국문시가 (향가, 시조, 가사 등)보다 월등히 풍부하고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한시를 빼놓으면 우리문학의 유산은 많이 부족합니다. 우리 문학 또는 문학 일반의 폭과 깊이를 알려면 한시를 읽어야 합니다. 한시는 한문으로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고 말했다.

 

근대 유럽과학기술문명이 이룩한 성과를 이어면서, 중국이 겪은 크나큰 역사 경험과 일본의 세밀한 고증 능력과 월남이 이룩한 놀라운 승리의 결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거대 이론을 만드는 철학하는 능력이 남달라서 시대 전환을 주도할 위치에 서 있다. 시대 전환은 문명의 업그레이드이다.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조화가 급선무이다. 

 

짧게 보면 근대는 200년, 길게 보면 중세는 2000년이었다. 인류는 2000년 동안 정신을 연구했고, 200년 동안 물질을 연구했다. 유럽의 중세는 암흑기였고, 동아시아의 중세는 황금기였다. 유럽이 주도한 근대는 중세부정의 시대였다. 동아시아가 주도할 다음시대는 중세를 새롭게 이해하는 시대이다. 

 

중세 전기에는 철학 사상을 시로 나타냈다고 한다. 다가오는 겨울 연수에서 나는 <한시동시로 만나는 우리 시의 큰 흐름>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마침 동시에 대한 열기가 타오르고 있다. 인문학으로 독서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이른데 힘입어 한시가 얼마나 우리 가까에 있었는지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한시 낭송의 재발견은 초등교육 차원에서는 본 상품에 손색이 없는 푸짐한 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