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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편지에서 초등한자병기와 관련한 칼럼을 이곳에도 올려놓겠다고 했습니다. 생각나서 올립니다. 다시 읽어보니, 글이 너무 길어서 읽기가 힘듭니다.

 

 

교육부가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을 만들고 있습니다. 올 들어 국어, 영어, 수학, 역사 등 교과마다 공청회를 열고 총론 공청회와 토론회도 자주 열고 있지요. 2015년으로 못 박고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없어 보입니다. 공청회에서 이런저런 문제를 이야기해도 못 들은 척 제 생각대로 밀고 나갈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교육과정을 바꿀 때마다 몇 차 교육과정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1차 교육과정, 2차 교육과정 이렇게요. 그러던 것이 2007년부터는 2007교육과정, 2009교육과정, 이렇게 부르게 되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새 교과서에 담기 위해 교육과정을 개정해온 탓이지요. 2007년부터는 바꾸고 싶을 때마다 바꾸는 소위 ‘수시 개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출처: 연합뉴스

올해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이번에 바꾸는 교육과정에는 역사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근현대사를 줄인다는 이야기도 있고, 국정교과서로 돌아간다는 말도 있고, 가끔씩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역시 이번 교육과정 개정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제 말을 하려고 바꾸는 듯 싶습니다.

불과 몇 년 전 이야기니 대부분 기억하실 것입니다.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다른 후보가 박근혜 후보의 아버지 이야기를 했었지요. 일본 이름이 ‘다카키 마사오’인데 일본 헌병으로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쓴 친일파였다고 했습니다. 간혹 책으로 읽기는 했지만 방송에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세상이 달라졌구나 싶어서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다카키 마사오’를 이야기한 후보의 당이 대한민국에서 사라지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그 일 때문인지 정치하는 사람들 중에 역사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부정선거를 하다가 쫓겨난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라 칭송하기도 하고,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친일파다, 아니다 열을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육과정을 개정하나 싶습니다. 사람들 입을 막을 수도 없고, 답답했는데 교과서에다 떡 하니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으니 말입니다.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쓰기가 눈치 보이면 줄이거나 없애거나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슬쩍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한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에서 1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초등학교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이번 2015교육과정에서 역사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역사는 책이 그렇다 해도 교실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지만, 지금 말하고자 하는 문제는 차원이 다릅니다. 아이들 삶이 송두리째 뒤집힐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초등학교 모든 교과서에 한자 낱말이 나오면 거기에 한문을 같이 써넣겠다는 계획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듣고 보니 놀라운 일이라서 여러 사람이 공청회와 토론회에 가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자를 각주로 밑에다 쓰면 어떻겠냐 했다는데 현재로써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뜬금없이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 논쟁이 붙었습니다. 뜬금없다고 한 까닭은 그간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넣자고 소리 높여 말하는 선생님도 없었고, 학부모들이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데모를 한 적도 없었으며, 아이들은 더더욱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선생님도 아니고, 학부모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면 도대체 누가 한자 병기 주장을 꺼냈을까요? ‘한자를 쓰면 된다, 안 된다’를 떠나 도대체 누가 뜬금없이 이 이야기를 꺼내고, 교육과정에 넣을 수 있는 힘을 가졌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처음에는 한문 선생님들이나 한문학자, 대학에서 한자를 가르치는 사람, 중국말이나 일본 말을 가르치는 사람들일까 싶었습니다. 한자를 굉장히 잘하고 좋아하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대통령이 한자를 잘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한자교육을 잘해야 우리 겨레가 잘살고, 아이들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뚜렷한 뜻을 가지고 벌이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참 순진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예전에 인기리에 방영됐던 수사반장 같은 드라마를 보면, “그 사람(피해자)이 잘못되어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이 범인”이라고 맨날 이야기했는데, 초등학교 아이들 교과서에 한자를 한글과 같이 실어 놓는다고 그들이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말입니다.

물론 초등학교 교과서에 당장 한자 낱말이 실리게 되면 가르치는 선생님도, 배우는 아이들도, 학부모들까지 그냥은 넘어가지 못할 겁니다. 무슨 글자인지 살펴보기라도 해야 하고, 간단한 글자는 읽고 쓰기를 가르쳐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선생님에게 물어보는 아이도 있어서 한자를 많이 알지 못하는 나 같은 선생님은 공부시간마다 잔뜩 긴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뜩이나 배울 거리가 많아서 아이들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못하는데, 교과서마다 들어찬 한자가 신경 쓰여서 한자 받아쓰기라도 해야 하나 걱정할지도 모르지요. 교과서에 있는 한자 읽기 쓰기 숙제를 내어주는 선생님도 생겨날 것입니다.

학교에 있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이 정도면 부모님들은 더 할 것입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데 한자를 하나도 몰라서 뒤처지면 어떻게 하나, 선생님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서 학교 가기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옆집 아줌마가 어디 어디 학원이 한자 잘 가르친다고 하면 귀가 솔깃해질 테지요. 신문이나 텔레비전 같은 데서 무슨 무슨 한자책, 한자 마법 그림책, 컴퓨터로 공부하는 한자 프로그램 같은 것을 선전하면 늦기 전에 우리 아이도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질 것입니다.

저도 첫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때 유치원 아이들이 모두 한자 급수 시험을 친다고 해서 우리 아이는 어떻게 하나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학교 전체가 한자 급수 시험을 돈 내고 보면서 그걸 학교 경쟁력이라고 자랑하는 곳도 생겨날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다는 뛰어난 글자, 한글은 제쳐두고 평생 한자 공부를 해서 시험을 치고 그렇게 합격한 한자 실력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 줌도 되지 않는 이들이지만 한자를 배워서, 아는 것이 먹고 사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하면서 배운 한자와 지식으로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따돌리던 때 말입니다.

한글을 쓰면서부터 그런 시절은 끝이 났습니다. 못 배운 백성들이 한글로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제 이야기도 소리 높여 말할 수 있게 되고, 그것 때문에 이 땅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한자 모른다고 구박하는 사람도 없고, 한자 몰라서 크게 불편한 일도 없어졌습니다. 옛날 책을 보기 위해 한자가 필요하다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자 전공하는 학자들이 번역하는 일을 부지런히 하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좋은 세상을 등지고 다시 옛날로 되돌아가겠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놀라운 일입니다. 부모들 등골 빼먹는 사교육비에, 그러지 않아도 제대로 놀지 못하는 아이들 삶을 더 쥐어짜는 이따위 일을 하라고 교육부에다 소리 높이는 이들은 참으로 누구인가요?

수사반장에 나온 말처럼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넣어서 이득이 생기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아이들이야 힘들어 죽든 말든, 부모들이야 평생을 돈에 쪼들리면서 살든 말든 힘 있고 높은 데 있는 교육부 사람들을 움직여서 제 잇속만 챙기는 사람들 말입니다.

한자 급수 시험 치면서 돈 받는 사람들, 한자책 만들어서 돈 버는 사람들, 한자 가르쳐서 돈 버는 사람들 말입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은 굳이 한자가 아니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교육부에서 뭐라도 가르치겠고 하면 벌떼처럼 몰려들어서 단물을 빨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산 지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어른들에게 실망하고, 배울 것이 너무 많아서 주눅 들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시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살아왔습니다. 말이라도 제대로 하면서 살게 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어떻게든 저 아이들이 제 속에 든 이야기, 억눌렸던 이야기, 답답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가게 해야지, 선생이라면 그렇게 해야지, 싶었습니다.

살다 보니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들 도란도란 말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아이들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어른들이 한 명이라도 많아져야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제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고,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교육부에서 아이들 삶을 송두리째 쥐어짜는 한자병기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한자에 짓눌려 살아갈 아이들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마음이 아픕니다. 여러 사람들이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이야기 써주세요.” 해서 칼럼을 쓰기로 했는데 한참 머뭇거리다 이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 이야기가 제 속에 꽉 차서 다른 이야기를 쓰기 어렵습니다. 편집하는 분들께 미안하지만 널리 헤아려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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