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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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에는 우리 학교에서 물골안 잔치를 합니다. 다른 학교에서는 학예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른 반은 발표를 많이 하지 않는데 우리반은 4개나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 차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이들은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모양입니다. 줄이고 줄였는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3월에 지각대장 존으로 연극을 한 적이 있습니다. 관객도 따로 없고 우리 교실에서 책 읽어주고는 연습도 없이 곧장 한 것입니다. 물론 분장이나 소품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그림책 속에 나오는 존이 되거나나 악어, 사자, 선생님이 되어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아이들도 재미있었지만 지켜보는 나도 무척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놀이속으로 쑥 빠져드는 아이들이 놀라웠습니다. 아이들도 그때 생각이 났는지 지각대장 존으로 연극을 하자고 했습니다. 나도 그러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라면 상자를 잘라서 악어 꼬리를 만들고, 종이로 사자 탈이나 고릴라 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연기 연습을 했지요. 걸어나올 때는 이렇게 해라, 말소리를 더 뚜렷하게 내라, 좀 천천히 걸어라,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들보고는 연습을 한다고 해놓고 어느새 잔소리를 하고 있었지요.

 연극 놀이를 하는데 지난번처럼 재미나지가 않았습니다.아이들은 점점 내 잔소리에 주눅이 들었지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제대로 하지 않는 아이들이 답답했습니다. 하루는 영*이가 연극이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지난 번에는 재미있었는데 이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옆에서 듣고 있더니 고개를 끄득였습니다.

 저도 속이 상했습니다. 한다고 해놓고 안 하면 어떻게 하냐, 연극놀이랑 연극 공연은 다르지 않냐, 했습니다. 연극 놀이는 우리가 재미있으면 되지만, 연극 공연은 보고 있는 사람이 재미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목소리를 크게 해서 보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해야 된다고 말했지요. 아이들은 더 풀이 죽었습니다. 재미가 없어도 해야 된다고 하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을 겁니다. 저는 그런 마음도 잘 몰랐습니다. 그저 내 마음만 생각했지요. 부끄러운 일입니다.

 목요일 날은 연극 선생님이 오시는 날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연극 선생님께서 수업을 하러 오셨길래, 한 번 해보고 어떤 것을 고쳐야 하는지 말해달라고 했지요. 점심 시간에 연극 선생님께서 저에게 물어봤습니다. "영*이에게 왜 주인공을 하라고 했어요?" 하길래 지난 번에도 한 번 했고, 이번에도 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영*이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어렵다고 했습니다. 성실한 아이가 해야지 열심히 연극을 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영*이는 연극공연하는 날, 안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면서 걱정을 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영*이가 그러면 어떻게 하나, 나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른 아이로 바꿔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그깟 학예회가 뭔데? 싶어졌습니다. 영*이가 안 한다고 하면 다른 아이가 해도 되고, 안 되면 나라도 무대에 올라가서 하면 되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지난 번에 이오덕 선생님 책을 읽는데 아이들 소박한 작품을 고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봐줘야 한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들이 진지하고 재미있게 한 것이라면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속에 아이들 삶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이들의 삶은 봐주지 않고, 거기 학예회에 보러 온 어른들에게만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래놓고 내가 아이들 편에 서서 가르치는 사람인가 싶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저도 학예회가 싫어졌습니다. 아이들 잔치라고 했는데 어른들 잔치인 것만 같습니다. 다 나 때문입니다. 놀이판은 놀이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모두 흥이 나야 살아나는 법입니다. 그래야 마음껏 놀 수가 있으니까 말입니다.

 

 지난 주 화요일에도 연구소 모임을 가졌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빌뱅이 언덕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권정생 선생님 글은 읽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자꾸만 내 이야기인 것 같아서 되돌아보게 된다는 이야기도 하고 왜 우리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마음을 두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뒷풀이로 이어졌습니다. 한 선생님이 권정생 선생님처럼 자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릴 때 삼촌이 프로스팩스 운동화를 사준다고 해서 자지도 않고 기다렸답니다. 나중에 삼촌이 운동화를 줬는데 국제상사 신발은 맞는데 프로스팩스 표시가 없더라네요. 그걸 받고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옆에서 왜 우냐고 자꾸 물어보는데 대답을 할 수가 없더랍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다른 선생님이 비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 아무도 오지 않는데 선생님께서 동전을 주시는 바람에 그 돈으로 따뜻한 국수를 사먹었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날은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밤 늦게 뒷풀이를 했습니다. 10년 20년 오래 함께 했는데 우리는 우리가 아팠던 이야기, 어릴 적 이야기를  제대로 나누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선생님, 옆에 사람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말입니다. 답답하거나 억울한 일, 쓸쓸한 일이 있으면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2015년 11월 23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1. 5월에 첫 번째 편지를 부치고 나서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써서 선생님들께 부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만 지난 주에는 거르고 말았습니다. 모임에 일도 많고 학교에서도 제가 맡아서 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시간을 내지 못해서 마음을 조리다가 그러지 말자 싶었습니다. 무엇이든 너무 매달리면 주위를 둘러보지 못합니다. 지난 주에는 편지가 그랬습니다. 그렇게 한 주를 넘기고 나니 다시 편지 쓸 마음이 들었습니다.

 

2. 내일까지 분과 일정표가 다 나오면 곧 접수 게시판을 만들어서 시험할 것입니다. 이번주 금요일이나 다음주 월요일에 겨울연수올 분들 신청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되는대로 전화나 메일 보내드릴 것입니다.

 이번 연수는 정회원연수입니다. 정회원들만 올 수 있지만 연수에 오셔서 정회원으로 새로 가입하셔도 됩니다. 둘째날 오후에 남한산학교 방문을 잡아두었습니다. 학교가 작아서 너무 많은 분들은 못 온다고 하네요. 연수 인원을 100명으로 정해두었습니다. 우리 모임 회원이 모두 600명정도 입니다. 오실 마음이 있는 분들은 문자 보시는 대로 얼른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며칠 말미를 줘서 취소가 되니까 먼저 신청을 해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3. 수원모임에서 이번에도 애를 쓰셨습니다. 겨울계간지 마감을 했다고 합니다. 서두르면 12월 초순에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우리 모임이 생기고 나서 가장 빨리 나가는 겨울호가 아닐까 싶습니다. 진현 선생님, 수원모임 선생님, 올 한 해 진짜 애 쓰셨다는 말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4. 겨울호에 부록 자료가 없습니다. 함께 만드는 부록의 양이 많아서 디자이너가 계간지 보내는 날에 맞출 수가 없다고 합니다. 계간지 보내고 나서 일주일 지나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온나라에 흩어진 선생님들이 동화 소개글을 보내주셨고, 연영 간사님께서 갈무리를 했습니다. 제가 모임 회장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함께 하는 일입니다. 그 부록이 세상에 나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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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마음 2015.11.25 02:49
    강수 선생님~ 전 선생님 편지를 받으면 마음이 참 따뜻해지기도 하고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그래요.
    노는 아이들 마음은 들여다보지 않고 구경하는 어른들 마음만 신경쓴 일, 많이 반성합니다.
    저도 곁에 있는 이들과 일 이야기말고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도록 해야겠어요.
    그리고 선생님, 편지쓰시는 일이 부담되지 않게, 건너뛰기도 하시면서 싸목싸목 하셨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편지쓰시는 일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답글 남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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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감 2015.11.25 14:19
    고맙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겨울에 뵙고 인사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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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감 2015.11.26 15:46
    저는 선생님 댓글을 메일로 받은 줄 알고 오늘 한참 찾았습니다. 여기 오니까 다시 뵙네요. 제 걱정을 해주셔서 참 따뜻했습니다. 편지 쓰는 일은 아마도 제가 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일매일 온나라 선생님들을 찾아뵙고 어려운 것도 이야기하고 어떻게 길을 걸어갈지 나누어야 하는데 몸이 무거워서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편지라고 쓰자 싶었던 것입니다. 가끔 답을 주시거나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힘을 냅니다. 선생님 댓글 읽고도 힘이 났습니다. 싸목싸목이라는 말, 잘 알지는 않지만 선생님 글을 보니 어렴풋이 잡힙니다. 재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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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마음 2015.11.26 22:59
    싸목싸목은 전라도 사투리인가봐요. 저는 천천히, 쉬엄쉬엄과 비슷한 느낌으로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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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니(수원진현) 2015.11.25 14:39
    앗...이런이런...계간지 아직 마감 안됐습니다. 이번 겨울호에는 원고가 너무 적어서 지금 부랴부랴 충원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부록이랑 같이 12월 둘째주에 나오는게 어떨까 싶은데요. 이번 겨울호는 부록이 핵심이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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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감 2015.11.26 15:42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늘 애쓰시는 바람에 계간지가 세상에 나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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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니(수원진현) 2015.11.27 10:27

    계간지 겨울호 마감했습니다. 12월 10일 쯤에 부록과 함께 마무리되어 발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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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15.11.30 09:02
    선생님, 고생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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