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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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제가 사는 물골안에 바람이 많았습니다. 

 하늘은 뿌옇게 흐리고 태풍같은 바람을 타고 황사가 몰려왔습니다. 며칠 전 토요일에도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하늘도 아쉽고 슬펐나 봅니다.

 저는 그날 서울 종로에 갔더랬습니다. 국어교과모임 전국회의가 있었거든요.

 회의를 마치고 나서 바로 옆에서 하는 추모집회로 가 보았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우산을 사서 쓰고 갔지요.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우산 때문에 무대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윤승용 선생님이 차라리 길 건너편에서 지켜보자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멀리서 잠깐 노래를 듣고 있다가 가만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왔더니 애가 쓴 편지글이라면서 애엄마가 보여주었습니다. 혼자 놀다가 썼다는데 거기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언니 오빠는 죽어있는데 우리는 웃고 떠들어도 되나 궁금하기도 해."

 나한테 하는 말 같아서 미안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뜨겠지만 그렇게 보내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습니다. 슬픈 일들은 빨리 잊어야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그 부모님들이 생각나서 그것도 안타까웠습니다. 생각할수록 참 쓸쓸한 일입니다.

 

 주말을 보내고 학교에 오니 아이들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경수와 장우는 아침부터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놉니다. 내가 학교에 들어가면 손을 흔듭니다. 저도 손을 흔들며 웃어줍니다. 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교실로 들어갔더니 지훈이가 새로 산 장난감 자랑을 했습니다. 일본 자동차 모형인데 새 시리즈가 나와서 아빠가 사줬다고 합니다. 나도 한 번 보여달라고 하니까 오늘 아침 학교 마당 구석에 데리고 가더니 살짝 보여줍니다. 지훈이가 자랑하면 부러운 표정을 지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훈이가 더 좋아하니까 그렇습니다.

 어제는 수학 공부를 하는데 경수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놀기만 합니다. 요요장난감을 꺼내서는 바닥에 굴리며 놉니다. 다른 아이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경수야~ 불렀는데 힐끗 보더니 들은 척도 안 합니다. 오늘은 공부가 하기 싫은가 봅니다.

 바닥에 앉아 있는 경수 손목을 잡아 끄니까 내 자리로 따라나옵니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도 삐죽입니다. 저는 공부 안 하면 나중에 4학년 되어서 힘들다고 말해주었지요. 다른 아이들 다 공부하는데 애기처럼 장난감 가지고 놀면 어쩌냐고 했습니다. 경수가 눈도 안 마주치길래, 물었습니다. 애기들은 공부시간에 장난감 가지고 놀아도 꾸짖지 않는데 널 애기처럼 대해줄까? 아니면 이럴 때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하라고 꾸짖을까? 했습니다.

 경수는 한참 생각하더니 다른 아이들하고 똑같이 하라고 합니다. 저는 옳다구나 싶이서 막 야단을 칩니다. 갑작스레 돌변해서 소리를 지르는 선생님을 보더니 주르르 눈물을 흘립니다.

 아이들을 집에 보내고 나서 혼자 생각해보니 제가 참 한심합니다. 애를 그렇게 해서 집에 보내면 어떻하냐 싶었지요. 공부하기 싫으면 그 마음도 알아줘야 하는데 그껏 한다는 것이 소리나 지르고 말입니다. 경수보다 제가 더 어린 것 같습니다. 오후에 경수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오늘 아침 학교에 오는데 또 경수와 장우가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습니다. 미안해서 먼저 부르지 않았는데 경수가 선생님 부르면서 손을 흔들어줍니다.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웃는 경수 얼굴을 보니까 저절로 힘이 났습니다. 

 그렇게 소리지르고 웃고, 때로는 미안했다가 힘이 났다가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고 그런 것이겠지요. 어쨌든 그렇게 살아가야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내일은 더 많이 웃겠지, 내일은 사과할 수 있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희망 없이 죽어버린 이들이 생각나서 쓸쓸해졌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2016년 4월 19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1. 토요일에는 국어모임 전국회의가 있었습니다. 온나라 골골마다 뿌리를 둔 선생님들이 모여 이야기를 했습니다. 온작품읽기 하려면 책이 있어야겠다 싶어서 준비를 하고 있다는 모임, 주제별 시모음집을 모으고 있다는 모임, 아이들이 몇 년 동안 쓴 시를 모아서 낼 준비를 한다는 모임도 있었습니다. 저마다 가지가지 빛깔을 내뿜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어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는 청주와 군포에 새로 모임이 생겨나서 모임 회장님이 오셨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다른 선생님들이 조금씩 자기 경험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새로 생겨난 모임들이 힘차게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출판사 이야기도 나와서 서울 박지희 선생님이 1학년 아이들과 하고 있는 <첫배움책>을 내기로 했습니다. 여름에 내어서 계간지와 함께 선생님들께 드리면 겨울 되어서 필요한 선생님들이 전화를 줄 것 같았습니다. 느리게 느리게 가고 있지만 이런 힘들이 세상을 바꿀 것 같습니다.

 

2. 연수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이번에는 새학교넷과 함께 하기 때문에 우리 모임에서 신청할 수 있는 사람수가 줄어들 것 같습니다. 100명 정도 자리가 줄어들 것 같은데, 나중에 온라인 접수가 시작되면 빨리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새학교넷과 함께 하려는 뜻도 나누었고, 뜻을 나누면서 우리 모임이 어떤 운동을 펼쳐가는지 알아채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연수에서는 더 젊고 씩씩한 선생님들이 앞장 서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날이 새롭고 싱싱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새로운 길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지요. 새로운 길은 우리가 걸어온 그 길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우리에게서 나온 길이지만 새로운 길을 우리를 뛰어넘어 저 앞으로 걸어 갈 것입니다. 저는 그게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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