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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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등이 아파서 한의원에 다녀왔습니다.

 날이 추워지니까 또 그런가 싶어서 침도 맞고 뜸도 뜨고 돌아왔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배가 아파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하더니 어제 저녁에는 온 몸에 힘이 없고 배가 아팠습니다. 열세 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학교에 왔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왔습니다. 배탈이 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배알이 부글부글거리지만 약을 먹어서 그런지 훨씬 편합니다.

 배가 아픈 건 지난 화요일, 연구소 뒷풀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날은 책 읽은 이야기도 오래 하고, 못 다한 이야기를 하느라 뒷풀이도 길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글 바로쓰기 3권>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매주 화요일마다 나가는 연구소는 <이오덕김수업교육연구소>입니다. 그 분들 책을 읽고 실천하면서 살아가자는 뜻으로 만든 곳입니다. 거기에 가면 먼저 누군가 싸온 간식을 먹고 일주일 동안 살았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날 공부하기로 한 이야기를 하는데, 누구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리 글로 써옵니다.

 그날은 김영주 선생님이 써온 글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거기에 "일은 함께 하는 뜻을 세우고 함께 풀어갈 때 일 다워진다."고 써있었습니다. 남한산 학교에 처음 갔을 때, 일뿐 아니라 사람에게 소외되었던 이야기도 있었고, <우리말우리글>을 함께 만들어서 우리 모임이 더 단단해졌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었나 돌아보니, 그 가운데에 '함께 하는 일'이 있었어요."

 아! 그랬었구나 싶었습니다. 함께 살아가려면 함께 일을 해야 했던 것이지요. 누구는 앞에서 일을 시키고, 누구는 뒤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일에서도 삶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게 됩니다. 서로 따돌리는 삶은 함께 나눌 수가 없지요.

 집에서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가끔 우리집 아이들에게도 일방적으로 시킬 때가 있습니다. 장난감 치워라, 옷 걸어두어라, 양말 통에 넣어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꾸 하지 않으려 하고 늑장을 부립니다. 그런데 함께 하자고 하면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하려고 애를 씁니다. 책장 앞 닦는 일이나 방바닥 닦는 일까지 합니다. 함께 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혼자 하는 일은 쓸쓸하기도 합니다. 옆집 아저씨가 혼자 밭에 있는 걸 보면 쓸쓸해져서 가끔 저도 나가서 거들 때가 있습니다. 비닐도 잡아주고, 모종도 날라주고, 호미질도 가래질도 함께 합니다. 별 도움은 안 되지만 그렇게 하고 돌아오는 길은 저도 농부가 된 것 같아서 뿌듯해지곤 합니다. 집에 돌아와서 막걸리라도 한 잔씩 돌리면 더 좋습니다. 더이상 쓸쓸하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나누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할 때도 있지만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공부는 내가 가르치고 아이들이 배웁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 딱 정해져 있어서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가끔 공부가 일처럼 될 때가 있습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정근이 할아버지한테 볏짚 두 단을 받아놓고 한 번은 새끼줄 꼬기 연습을 하고 한 단이 남았습니다. 움집을 지으려고 남겨둔 것입니다. 학기 초에 아이들과 뭘 공부할지 의논 할 때 가을에 함께 움집을 짓자고 했지요. 지난 주에는 내내 추워서 바깥에 나갈 생각도 못하다가 어제 안개가 걷히자 마자 학교 앞 오솔길로 나갔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라고 했더니 금세 모둠을 지어서는 일을 시작합니다. 뼈대로 세울 나뭇가지를 주워오는 아이, 기둥 받치는 돌멩이를 주워오는 아이, 볏짚으로 기붕을 엮는 아이들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연경이는 제 머리통만 한 돌덩이를 주워오느라 끙끙 거립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솔길에 다람쥐가 들어갈만한 움집 몇 채가 지어졌습니다.

  어떻게 지었는지, 어떤 게 힘들었는지 말하라고 하니까, 다들 말이 많습니다. 평소에 발표를 잘 하지 않던 아이들도 말을 잘합니다. 제 몸을 움직여서 한 것이라 그런 것 같았습니다. 저도 어제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고 함께 집을 만들었습니다. 짚풀 묶는 것을 잘 못하길래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도와주었더니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습니다. 제가 지붕 엮는 기술자가 된 것 같았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일과 공부와 놀이가 하나가 되면 좋겠다고 합니다. 일이 잘 되면 놀이처럼 될 때가 있습니다. 임재해 선생님은 일을 하러 나가면서 풍물을 앞세워 가는 겨레는 우리밖에 없을 거라고 합니다. 일이 놀이처럼 되면 좋겠다는 바람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공부는 그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건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선생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공부도 일처럼 놀이처럼 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반 아이들도 제발 공부를 재미있게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교실에서만 하지 말고 밖에 나가서 몸을 움직여가면서 하자고 합니다. 공부를 놀이처럼 일처럼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인 나는 몸 움직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안전한 교실에서 안전한 자기 의자에 앉아서 안전하게 내 말을 듣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갑갑하다고 해도 참으라고 합니다. 함께 일을 하지 않으니 삶을 나눌 수도 없습니다. 가르치는 사람 자리에서만 서있으려고 하니까 배우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렵습니다. 모두 나의 문제입니다.

 우리 모임도 그렇습니다. 온나라에 흩어져서 겨우 서로의 소식만 듣고 맙니다. 어디서, 어떤 선생이 어떻게 하고 있다더라 이야기는 떠돌지만 함께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우리말우리글> 만들 때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새벽까지 이야기는 나누고 헤어져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회의가 새벽 4시에 끝나고 뒷풀이 한다고 동이 틀 때까지 해장국집에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함께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할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내 이웃처럼 가까웠습니다. 그때 만났던 선생님들과 어디까지라도 함께 가보자 마음을 먹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때 일이 까마득합니다

 모임 회장이 되고 나서 무슨 일이든지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하려는 동화 소개 부록이그  첫 번째 일입니다. 온나라 모든 선생님들이 한 분도 빠지지 않으면 좋겠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겨울연수도 지역모임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서 꾸려가도록 했습니다. 둘째날 하는 문화공연도 강강술래를 놀기로 했습니다. 말 그대로 함께 어우러지는 대동놀이입니다.

 <어린이와 함께여는 국어교육> 계간지 만드는 일도 함께 하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유명한 사람들 글보다 모임 회원들이 한 편씩 글을 실을 수 있는 회지가 되면 좋겠다 했더니 편집장을 맡은 진현 선생님께서 좋다고 맞장구를 쳐주셨습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글을 쓰다보니, 우리집 아이들 잘 시간이 되었습니다. 함께 누워야 잠도 잘 오는지 아이들은 저희들이 잘 때까지 함께 누워있자고 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2015년 11월 5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1. 그날 모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때 장상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텔레비전에 나와서 말하는 것들이 온통 거짓말인데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어찌 저럴 수 있나 싶었다고 했습니다. 삶이 진실되지 않으니 말고 그런가 싶습니다. 자기는 하지 않고 시키기만 하니 저렇게 말한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들처럼 되지 않아야겠다 싶었습니다.

 

2. 전남 광주의 김형도 선생님이 겨울연수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전체 강좌도 뜻깊을 것 같고, 지역모임이 함께 하는 모둠강좌도 정다울 것 같습니다. 강강술래 잘 하는 분한테 대동놀이를 이끌어 달라고 했는데 그분이 바빠서 안 된다고 해서 고민입니다. 안 되면 제가 장구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해볼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장구를 배워본 적도 없고 풍물을 해본 적이 없지만 선생님들 앞이라면 용기를 낼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 중 누군가가 어설픈 저를 슬쩍 밀어두고 그 놀이판을 이끌 것 같기도 합니다.

 

3. 이제 추워집니다. 겨울이 되면 만날 수 있다니까 반갑습니다. 그때는 그간 편지 보내었던 이야기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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