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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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 놀이 시간부터 비가 내립니다. 교실이 비때문에 어둡고 춥습니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따뜻한 기운이 돌았는데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니 더 춥습니다. 불을 환하게 켜놓아도 그렇습니다. 긴 겨울이 시작되려나 봅니다.

 비 때문에 나가 놀지 못한 아이들이 라면을 끓여달라고 해서 오늘도 한 컵씩 나눠먹었습니다. 그렇게 후후 불어서 함께 먹고 나면 내가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이라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 때문에 웃을 때가 많고, 아이들 때문에 힘을 내곤 합니다. 집에서도 그렇고 학교에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부부싸움을 하거나 다른 선생님과 언짢은 일이 생겨도 아이들이 있으니까 금세 잊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없으면 어른들만 무슨 재미로 사나 싶기도 합니다.    

 지난 번에 밥을 먹다가 우리반 연경이가 갑자기 물어봤습니다. "선생님 영어로 사과가 뭔지 아세요?"하길래, "내가 그렇게 어려운 걸 어떻게 알아."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애플"이라고 합니다. 내가 못 알아듣는 것처럼 하니까, "애플이라니까요 애플" 합니다. 뭘 알면 겸손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귀여워서 옆에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연경이가 이렇게 어려운 것도 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아이들도 신이 나서 자꾸 문제를 냅니다.

 '금은 금인데 빛나지 않은 금은 뭐냐'에서 '300+300은 뭐냐?'까지 가지가지 문제를 냅니다. 나도 신이 나서 자꾸 틀립니다. 선생님이 자꾸 틀리니까 저희들끼리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자꾸 나를 가르쳐주려고 하고, 나중에는 그것도 모르다니 도와줘야겠다는 표정도 짓습니다. 옆에 있던 석경이가 자기는 영어로 글씨도 쓸 줄 안다면서 밥 다 먹고 교실로 나를 끌고 가서 칠판에 써줍니다.

 진짜 하나도 안 틀리고 다 맞습니다. 나는 이것도 글씨냐고 하면서 어떻게 이런 것을 다 아냐고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석경이는 그만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다른 아이들도 질새라 칠판 연필을 받아서 덧셈 문제도 내고, 한자 문제도 냅니다.  이제는 무식한 선생님은 제쳐두고 똑똑한 자기들끼리 문제내기 놀이를 하며 한참을 놉니다.

 어떤 날은 교빈이가 "내년에는 몇 학년 선생님 해요?" 물어봤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궁금한지 내 입을 쳐다봅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해마다 선생님끼리 시험을 보는데 공부를 잘한 선생님은 6학년이 되고, 시험을 못친 선생님은 1학년이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지난 해에는 너무 시험을 못 봐서 1학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닐 것 같기도 하고 그럴 것 같기도 해서 아이들이 헷갈립니다. 마침 옆에 6학년 박길훈 선생님이 지나가길래, 시험봐서 선생님 정하는것 맞지요? 하고 물어봅니다. 박길훈 선생님이 맞다고, 공부 시험을 잘봐서 6학년 선생님 되었다고 뻐기면서 말합니다. 6학년 언니오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까지 그렇게 말하니까 아이들은 그만 믿어버립니다. 그러면서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봅니다. 공부를 못하는 선생님이 불쌍한가 봅니다.

 나는 아이들을 속이는 게 재미가 납니다. 지난 해 시험에서 수수께끼가 어려운 게 나와서 그만 꼴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올해는 수수께끼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다고 말했더니, 아이들이 도와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 뒤로 아이들이 점심시간 때나 쉬는 시간 때 수수께끼를 냅니다.  석경이는 수수께끼 책을 가져와서 문제를 냅니다. 덕분에 수수께끼를 아주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지난 번에 낸 문제를 자꾸 틀리니까 답답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가을이 깊어졌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니까 학교 마당에 세워두었던 허수아비의 치마가 자꾸 내려갔습니다. 비도 오고 바람도 부니까 그런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과 차를 마시면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이제는 그만 뽑아야겠다고 해서 어제 오후에 학교 마당에 나갔습니다. 허수아비를 뽑아서 옷을 벗기고, 짚풀을 꺼내서 버렸습니다. 십자로 만든 나무는 내년에 만들자고 학교 창고에 넣어두었습니다. 이제 아이들과 함께 겨울 날 채비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겨울이 되면 더 쓸쓸해질 것입니다. 겨울을 보내고 나면 아이들과 헤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그렇습니다. 한 해 살이에 길들여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매년 새로운 아이를 맞이하고, 서로를 알아나가다가 또 해가 바뀌면 그 아이들을 하나씩 잊어가는 일이 반복됩니다. 좀 길게 살아봐야 겠다 싶어서 이곳 물골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올해 만났던 아이들을 한 번 더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6학년이 될 때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냥 혼자 생각입니다.

 비가 그치지 않습니다. 줄곧 내릴 것 같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2015년 11월 13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1. 동화 소개하는 말들을 모아서 책으로 묶으려고 합니다. 이름을 뭘로 할지 모르겠습니다. 간사님께서 빨리 이름을 내놓으라고 해서 고민입니다. 혹시 마땅한 이름이 번뜩 생각나신 분들은 짤막하게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2. 겨울 연수 날짜를 물어보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겨울을 준비해야 할 때인가 봅니다. 이번 겨울 연수는 1월 4일(월)부터 6일(수)까지 입니다. 오산 한신대학교에서 열리고, 중간에 한나절은 김영주 선생님이 교장으로 있는 남한산학교를 갑니다. 눈이 내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김형도 선생님과 윤승용 선생님이 연수 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다음주에는 자세한 내용을 알려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3. 지난 주에 지역모임 대표 선생님들께 글을 보내었습니다. 우리 모임이 뜻을 잃지 않고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서는 출판을 하는 일을 놓아서는 안 되겠다고 썼습니다. 온나라에 퍼진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써온 글들, 지역모임에서 몇 년을 두고 공부한 자료들이 제대로 나눠지지 않습니다. 오래 담아두지 못해서 흩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몇 백부라도 출판을 해서 나누고 싶은데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돈도 많이 듭니다. 사람들이 사서 보지 않을 것 같다고 거절 당하기도 합니다. 이래서는 함께 나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돌려보는 것이라면 자그마한 출판사를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이라도 여러 선생님들이나 모임의 글들이 하나하나 모이면 그 힘으로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썼습니다.

 우리 모임은 맨처음 모임을 만들 때 대안 교과서를 만들었습니다. 단 하나의 국정 교과서가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 서명 운동도 하고, 토론회에도 가서 이야기도 했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하나하나 출판하고, 그 책이 몇십 권씩, 몇 백권씩 쌓인다면 그 책에 있는 것들로 수업을 한다면 국정교과서는 저절로 깨어질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온나라 모든 선생님들이 자기가 만든 교과서로 공부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날을 꿈꾸면서 살아갑니다.




역사에 후퇴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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