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겨울 정회원 연수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쓰러져 잠들고 이제야 정신을 차려 본다. 첫 시간은 한홍구선생이 열어주셨다. 가슴 아픈 독립운동의 역사를 눈물을 머금고 암울한 오늘의 헬조선을 돌아봐야 하는 현실 앞에서 희망을 잃지 말자는 말씀을 새겨들어야 했다. 이어진 분과 시간은 교육과정/ 주제활동, 그림책, 온작품읽기 수업, 그림자극, 글쓰기로 나뉘어 지역모임의 실천을 나누는 자리였다.

 

나도 '글쓰기 왜 가르치나?'라는 주제로 한꼭지를 맡았다. 내 강의로 글쓰기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는 선생님, 머리가 더 복잡해져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었다는 선생님의 말씀도 들었다. 그게 바로 교사로 나가는 성장통이 아닐까. 불편하게 만드는 무엇이 곧 나를 성장시킨다는 말을 잊지 않으시길 바랐다. 이번 분과는 참여하신 선생님들이 짧게나마 자기 생각과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다들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듣는 강의만이 아닌 낮은 실천이라도 서로 나누고 깊이 생각하는 연수는 앞으로 우리 모임의 특징이자 강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튿날엔 연수에 참여한 모든 선생님들이 남한산초등학교를 찾았다. 나야 열 번은 찾았던 곳이었지만, 이번 방문은 남달랐다. 우리 모임의 영원한 대표인 김영주교장선생이 남한산초등학교를 떠나면서 마지막 초대 손님을 맞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교장이 된 뒤로 5000여 명의 방문자를 맞았지만, 모임선생님들을 만나는 자리만큼 떨리는 자리는 없었다는 김영주선생. 강연을 귀기울여 듣는 80여명의 모임선생님들의 진지함에 그는 어느새 날고 있었다. 술자리에서나 보여주던 밝은 웃음과 자유스러운 몸짓은 곁에서 늘 그를 지켜보던 이들도 놀라게 했다.

 

다시 한신대 연수장으로 돌아온 자리에서 모임선생님들은 자기 소개와 함께 짧게 혹은 길게 때로는 떨기도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했다. 한 분 한 분 이곳에 온 분들이 모두 소중했다. '온 책 읽기 수업'을 모임의 사업이자 운동으로 삼고자 허락해달라는 김강수 회장의 선언에도 모임선생님들은 모두 그러겠다고 하셨다. 마치 모임의 새로운 출발을 보는 듯했다. 모임을 책임지며 모임의 위기와 생존 사이의 줄타기를 해야했던 지난 4년이 주마등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일어나 오늘의 모습을 지켜보며 힘들게 지난 4년을 잘 버텨온 것이 참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이 길에 나도 함께 하겠다고 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짠한 것이 눈물이 핑 돌았다.

 

저녁식사 뒤 진지함에 잔뜩 움츠렸던 선생님들이 한 데 모여 강강술래로 한껏 몸을 푸는 자리를 마련했다. 때 마침 나를 찾아온 손님 때문에 이 자리에서 뒤늦게 참여했지만, 보는 것만으로 흥겨웠고 모임선생님들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진 뒤풀이 자리에서는 지난 이틀을 돌아보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번에 회원이 된 청주모임선생님들을 만나 소모임을 어떻게 꾸릴 수 있고 어떤 공부를 하면 좋은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발적이고도 실천적인 소모임문화가 약한 충청지역을 돕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 적극적으로 말씀을 드리고 조만간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앞으로 대전세종, 충남지역을 아우르는 충청권 소모임 연합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마지막날. 이날은 함께 간 모임선생님의 말씀처럼 이번 연수의 가장 큰 빛이 기다리고 있었다. 권정생선생님의 동생노릇을 하셨던 동화작가이자 목사인 이현주선생님과 이오덕선생님의 제자이신 주중식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초대하기 힘들었던 이현주선생님의 말씀은 이철수판화가 이후 가장 감동적이었다. 한 치도 더하고 덜 함이 없는 삶 그 자체를 사는 분을 만난 것 같았다. 권정생선생님 사이에서 있었던 자잘한 삶과 이야기는 지금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 가운데에서도 권정생 선생님이 마지막 유언처럼 자신에게 던졌다는 '가르칠려고 하지 마래이'하는 말씀, 학생이 준비가 도면 스승은 자연스레 나타난다는 말씀이 또렷하다. 권정생선생님을 '용감한 영혼'이었다는 표현으로 정의하시는 지점에서는 괜시리 눈물이 났다.

 

모처럼 연수의 전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 좋았다. 연수국장 김형도선생의 고생이 보여 좋았고 남한산초등학교사정으로 연수에 참여하지 못해 마음으로 애만 쓰던 윤승용선생을 만나 좋았고 광주모임을 비롯한 시흥모임선생님들이 뒷바라지 하는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모임대표 김강수선생과 전 대표 김영주선생이 언제나 자리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임선생님들과 김강수, 김영주선생이 있어 오늘도 흔들리지 않고 선생의 길을 가고 있다. 때때로 선생의 자리에서 훌쩍 떠날 수도 있었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들때문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높은 자리를 언제든 차지할 수 있는 그들의 욕심은 알량한 권력이 아니라 이오덕선생님이 말씀하신 '참교육'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연수에서 나는 아직도 아이들의 선생으로서 한참 모자란 내가 좀 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 도와야 한다는 당위와 힘을 얻었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즈음에서도 이런 느낌을 갖는다는 게 참 다행이다 싶다. 참 다행이다 싶다. 세상은 어둡기만 하지만, 우리들이 있어 희망이 보인다. 한홍구선생님의 강의 끝에 보여주신 새싹이 피어난 사진 한 장이 곧 우리들이다 싶다. 그렇다. 우리가 가면 그것이 바로 길이다. 이번 연수도 그 길을 지나가야 하는 작고 소박한 정류장이었다. 앞으로 지나칠 정류장에서 우리는 또 다시 만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희망이다. 이번 연수는 바로 그 희망을 보여주었다.

  • ?
    빛나 2016.01.13 09:33
    무엇을 하고 나서 겪은 것들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일만큼 무거운 일도 없는 것 같다. 기록하는 이들은 어느새 성장해 있다. 자기는 모르겠지만 남이 보면 금방 안다. 최소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이니 오랜만에 보면 금방 구분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임 나이 열 살, 이제 뭔가 나아갈 때다. 돌아가면 80여분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우리 나라의 척박한 이야기문화를 견주어 볼때 정말 큰 의미를 갖는다. 이런 힘으로 꾸준히 가면 된다. 모든 선생님들에게 고맙다.
  • ?
    땅감 2016.02.02 13:32
    선생님의 글을 읽고 그날이 기억이 다시 또렷해집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려가나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 서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우리 연수를 오래 치르다보면 가끔 시간을 건너뛸 때가 있습니다. 이현주 선생님이나 이철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멀리 이오덕 선생님, 권정생 선생님과 다시 만나는듯 싶고 우리 이야기를 하다보면 먼 훗날을 그려보게 됩니다.
    혼자서는 생각하거나 느낄 수 없는 것인데 함께 모이니 그런 것들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나서 더 힘을 내려고 합니다. 전화하기가 어색해서 뒤로 미루기만 했던 일들도 오늘 모두 하고, 지역 선생님께 물어야 할 것도 오늘 물어봐야 하겠습니다. 여기 저기 연락을 하고, 글을 쓰고 새로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선생님 때문에 힘을 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이름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3 김강수 선생님, '사이'에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땅감 2016.05.25 64
62 김강수 선생님,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 땅감 2016.05.25 67
61 김강수 선생님, 바람이 많았습니다. 땅감 2016.05.25 57
60 김강수 선생님, 흰머리가 났습니다. 땅감 2016.05.25 55
59 김강수 선생님, 아이들이 손가락질하며 막 웃습니다. 땅감 2016.05.25 57
58 김영주 학년군별 마을교육과정 연수 1 빛나 2016.05.24 75
57 김영주 난 왜 두 손을 모을까 1 빛나 2016.05.19 64
56 김영주 마을 배움길, 마을 나들이 빛나 2016.05.17 56
55 김영주 마을학교 교사모임 1차 준비모임 알림 file 빛나 2016.05.16 44
54 김영주 마을학교교사모임을 함께 엽시다. file 빛나 2016.05.12 59
53 김강수 선생님 비가 옵니다 2 땅감 2016.05.03 65
52 김강수 온작품읽기 운동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2 file 땅감 2016.04.08 110
51 김강수 대안대학 선생님을 찾는다고 합니다. 4 file 땅감 2016.02.12 101
50 김영주 교사가 학교이고 교육과정이다. 2 빛나 2016.02.02 99
» 박진환 다음 정류장을 기다리며.....모임 겨울정회원연수를 마치고 2 갈돕이01 2016.01.07 98
48 관리자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한 연대단체의 대표님과 선생님께 관리자 2016.01.02 59
47 김강수 물골안 편지 - 쓸데없는 걱정을 했습니다.(11월 23일) 8 땅감 2015.11.24 111
46 김강수 물골안 편지 - 아이들 때문에 웃습니다.(11월 13일) 땅감 2015.11.24 54
45 김강수 물골안 편지 - 함께 일을 해야 겠습니다. (11월 5일) 땅감 2015.11.24 62
44 김강수 <함께 만드는 부록> 이름 공모 10 땅감 2015.11.24 9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모두보기
home
사랑방 이야기나누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