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2016.05.03 14:51

선생님 비가 옵니다

조회 수 65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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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밤부터 비가 내립니다. 바람도 휘날립니다.
운동장 끄트머리에 있는 키 큰 나무들이 바람 따라 흔들흔들 춤을 춥니다. 이런 날은 우산 쓰고 운동장에 나가보면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비 고인 곳도 건너 뛰어보고,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서늘한 느낌 때문에 소름이 돋을 것 같습니다.
아침에 학교에 왔더니 아이들이 복도를 내달립니다. 운동장에 나가지 못해서 갑갑한 것 같습니다. 가만히 놔두면 복도가 시장판이 될 것 같아서 교실로 들어오라 합니다. 늘 뛰어놀기 바빴지만 오늘 같은 날은 가만히 비를 느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비가 오는 날 읽는 시가 있습니다. 돌아가신 임길택 선생님의 시입니다.

         비 오는 날
                                        임길택

마루 끝에 서서
한 손 기둥을 잡고
떨어지는 처마 물에
손을 내밀었다.

한 방울 두 방울
처마 물이 떨어질 때마다
툭 탁 툭 탁
손바닥에서 퍼져나갔다.

물방울들 무게
온몸으로 전해졌다.
손바닥이 간지러웠다.

임길택 선생님 시를 읽고 있으면 아이처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흰머리가 나는 나이인데도 마음은 어렸을 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방학이어서 시골 외가댁에 갔던가 봅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데 동네 골목에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할머니도 마실 나가셨는지 보이지 않고, 마루에 혼자 앉아 비를 쳐다보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시에 나오는 아이처럼 기동을 잡고 처마물 손바닥으로 받았습니다. 툭툭 떨어지는 비를 한참동안 받고 서있었습니다.
그때 느낌을 잊고 살았는데 임길택 선생님 시를 읽고 나서 되살아났습니다. 그런 적이 있었구나.하고 말입니다. 임길택 선생님의 시는 짧고 깨끗합니다. 말 그대로 그냥 시입니다. 그래서 느낌이 셉니다.
아이들에게도 그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간혹 비 오는 날이면 칠판에 써줍니다. 때로는 분필로 그림도 그립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우리 외할머니댁입니다. 석면 슬레트 지붕을 타고 툭툭 떨어지던 그림입니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아이들도 저처럼 어른이 되겠지요. 먹고 사는 일에 바빠서 비가 와서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 날이 몇 해 지나가겠지요. 그러다가 문득 이 시가 떠오를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덩달아 나와 함께 살았던 삶도 생각날 것 같습니다. 우산 쓰고 운동장 산책을 하던 일, 구령대에 서서 가만히 듣던 빗소리, 손바닥으로 툭툭 떨어지던 비의 무게 같은 것들 말입니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아이들도 지금 저처럼 그리워질 것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운 것들이 쌓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돌아가지 못하고 그저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입니다. 그림으로 그리니까 그리움입니다. 생생하게 안을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그릴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좋습니다.
선생님들, 비 오는 날을 잘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2016. 5월 3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1. 경기도에서는 5월 1일부터 상용 메일을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글 프로그램으로 쓰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내야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저야 어떻게든 글을 보낼 수 있지만 받아보시는 분들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혹시 메일이 통할 수 있는 방법을 아시는 분이 있다면 저에게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연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5월 중순이 되면 분과도 거의 다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분과를 많이 열려고 합니다. 적은 수의 선생님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려는 뜻입니다.
제가 여는 분과는 주제 분과입니다. 프로젝트라고도 하고,통합수업이라도 하는데 가장 알맹이가 되는 것이 ‘주제’라고 생각해서 붙였습니다.
교과로 가르지 말고, 교실 속 아이들 삶을 드러내려는 공부입니다. 교실에서 했던 두 가지 사례도 듣고, 학교가 함께 주제수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도 듣습니다.저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묻고 길을 가야 하는지 짧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 먹고 나서는 2학기에는 어떤 주제 수업을 할지 서로 얼개를 짜보는 실습을 하려고 합니다. 분과에 참여한 선생님들 모두가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우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서로 삶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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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짠주 2016.05.12 14:20
    1-1. 누리집 게시판에 올리고 올린 글의 단축주소를 회원에게 문자로 발송하면 스마트폰에서 확인가능하고, 누리집 접속도 유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 문자 발송비가 든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1-2. 임시로 예전에 모임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활용은 하지 않고 있음)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글을 올린다면 실시간으로 알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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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감 2016.05.25 14:18
    진주형 선생님, 고맙습니다. 1번으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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