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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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황사가 불더니, 해가 높아졌습니다.

 운동장에서 놀다 온 아이들에게서는 더운 김이 납니다. 반팔을 입은 아이들이 늘어나고, 이제는 여름이 되어가나 봅니다.

 학교 마당 은행나무도 조그만 연두잎으로 뒤덮혔습니다. 문득 돌아보면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갑니다.   

 어제는 밥을 먹으면서 나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솔이가 우리 엄마 아빠는 일찍 결혼해서 사십한 살이야 하길래, 장우가 우리 엄마도 빨리 결혼해서 삼십 몇 살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선생님 나이를 물어봅니다. 장우가

 "선생님, 선생님은 우리 아빠 형이지요?"합니다.  

 "너희 아빠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

 "마흔네 살이에요."

 "야, 선생님 나이는 스물다섯이야. 너희 아빠가 훨씬 형님이네."

 그랬더니 옆에서 밥 먹던 아이들이 야단입니다. 거짓말 말라고 하면서 그럼 어떻게 선생님 되었냐고 아우성입니다.

 공부를 잘해서 3학년 때 시험쳐서 6학년으로 월반했다고 했지요. 아이들이 긴가민가 하길래 옆에서 밥 먹고 있던 영어선생님께 확인을 받습니다.

 "선생님, 예전에는 시험 쳐서 학년 올라가고 그랬지요~?"

 영어 선생님이 그렇다고 하니까 좀 조용해 집니다. 똘똘한 유진이가 그럼 어떻게 결혼해서 여울이를 낳았냐고 막 따집니다. 대학을 일찍 가서 연애를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너희들은 연애 같은 것 하지 말라고 일러줍니다. 연애할 때는 막 착한 척 하다가 결혼하면 본심이 나온다고 너희들은 절대로 연애하지 말라고 진심이 담긴 뻥을 치고 있는데 승혜가 갑자기 큰소리로 말합니다.

 "선생님, 흰머리 났다."

 처음에는 거짓말인줄 알았지요. 저는 흰머리가 한 번도 나본 적이 없었거든요. 괜히 나이 이야기 때문에 뻥을 치는 줄 알았습니다.

 진짜냐고 한 번 뽑아보라고 했더니 승혜가 뽑다가 힘들다면서 그만둡니다. 저는 우쭐해져서 아닐 거라고 스무다섯 살이 어떻게 흰머리가 나냐고 하면서 교실로 돌아왔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교실로 올라온 아이들이 내 자리로 몰려오더니 내 흰머리를 뽑아준다고 난리를 칩니다. 그러더니 손이 매운 호정이가 한 가닥을 뽑았습니다. 진짜 흰머리입니다. 뽑을 때 느낌도 생생한 걸 보니 내 머리카락이 맞습니다.

 "벌써 흰머리가 나다니 이럴수가.. 이제 내 청춘을 끝났네."하면서 거짓 눈물을 흘렸지요. 애들은 막 비웃습니다.

 처음에는 거짓 눈물이었는데 자꾸 울다보니까 진짜 서러운 겁니다. 흰머리가 나다니요. 아직 마음은 청춘인데, 이럴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거짓 눈물을 울다가 진짜 눈물이 찔끔 나왔습니다. 휴지로 살짝 닦고 나서 혼자 복도로 나왔습니다. 쓸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문득 돌아보더니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집에 가서도 흰머리 이야기를 하고, 교무실 가서도 흰머리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벌써부터 흰머리가 났다고 하고, 애 엄마도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난다고 위로 비슷한 것을 했지만, 좋은 마음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주에 3일 동안 우리반 아이들이 놀러와서는 잠 못 자게 괴롭혀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술을 자주 마셔서 그런가 싶기고 하고, 집 짓는다고 마음을 졸여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하여간 온갖 생각이 다 났습니다. 어제는 그래서 밤 늦게 혼자 맥주를 홀짝거리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무엇이든 처음은 새롭습니다. 첫사랑은 두근거리면서 씁쓸했던 것 같고, 선생님이 되어서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 분만실에서 가위질을 했던 기억도 새로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첫 흰머리는 새롭지가 않습니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살아온 날들 중에서 부끄러웠던 일도 떠오르고, 아팠던 일도 떠오릅니다. 보고싶은 사람도 생각납니다. 그러고보니 아버지 제사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얼마나 서러웠는지도 생각났습니다.

 아이들이 뽑아준 흰머리 한 올 때문에 되돌아본 것들입니다. 아이들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부터 놀기 바쁩니다. 더운 김을 막 뿜어냅니다. 저 아이들과 살아가다보면 또 한 올 한 올 흰머리가 돋아날 것 같습니다. 그런 날을 그려보니, 그것도 썩 나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흰머리 하나씩 뽑을 때마다 사탕 하나씩을 줄까 싶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한 올에 1원씩 쳐주었습니다. 10가닥을 뽑으면 10원이라서 뭘 사먹을 수가 있었지요. 잊고 있었는데 그때 생각이 납니다.

 아침마다 아이들이 우 달려들어서 밤새 자라난 흰머리를 뽑는 걸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그러면 학교가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2016년 4월 26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연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연수에서 늘 작가를 모셔서 사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인이나 동화작가에게 부탁을 드렸는데 이번에는 좀 색다른 분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박시백 선생님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그린 만화작가입니다. 7~8년 전에 그 책을 재미나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박재동 선생님 뒤를 이어서 한겨레 만평을 그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때 이야기, 또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께도 반가운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연락이 닿는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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