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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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하늘은 더 높아지고, 깊어졌습니다. 아이들을 집에 보내놓고 아득한 하늘을 쳐다 볼 때가 있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며 거기 빨려들어갈 것 같았습니다.

아침에는 머리를 제대로 닦지 않아서 그런지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습니다. 속도를 내려는데 하도 차가워서 브레이크를 잡고 내리막을 달렸습니다. 학교에 오면 늘 흐르던 등줄기에 땀도 오늘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가을이라서 그런 가 봅니다.

월요일 아침에는 차를 마시는데 여름 내내 마시던 매실차가 이젠 춥다고 해서 오늘은 따뜻한 국화차를 끓여 먹었습니다. 아이들 컵 속에 뜨거운 꽃 한 송이씩 피었습니다. 훌훌 불어가며 마시다가 내친 김에 '가을'을 글감으로 글을 써보았습니다.

 

            가을

                              박기범

가을은 좋다.

더울 때 바람이 불어서

시원하게 해준다.

 

가을이 되면 가장 빨리 바뀌는 것이 바람의 온도입니다. 그걸 기범이가 잘 찾아냈구나 싶었습니다. 여름 바람은 아무리 세게 불어도 축축한데 가을 바람은 마르고 점점 차가워집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시원한 바람이 불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난 주까지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2학기 계획을 짰습니다. 어떤 것을 공부하고, 무엇을 하면서 놀고, 찾아서 할 일이 어디 있는지 살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글로 적어서 부모님께 보내드렸습니다. 그러니까 2학기 공부는 오늘부터 제대로 시작하게 된 셈입니다.

이번주 할 일은 허수아비 만드는 일입니다.

정근이 할아버지 논 벼가 하루가 다르게 고개를 숙입니다. 알이 차서 그렇습니다. 참새가 날아와서 낱알을 따먹을지도 모른다면서 허수아비를 심어놓자고 하더군요. 저도 허수아비는 한 번도 만든 적이 없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낮에는 아이들과 함께 나뭇가지를 주워서 허수아비를 만들었는데 내일부터는 진짜 허수아비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오후에는 몇 집에 전화를 걸어서 짚풀이 있는지, 긴 장대가 있는지 물어보다가 나중에는 전체 문자를 보내서 낡은 옷을 한 개씩 가져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오늘 전화를 한 덕분에 수요일에는 물건이 준비될 것 같습니다. 그것으로 어찌어찌 만들기를 할텐데, 농협 뒤쪽에 있는 정근이 할아버지 논까지 걸어갈 생각을 하니 그것도 아득합니다. 아침에 학교 오자마자 가면 점심 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올 것입니다. 세상에 힘든 일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그것 하나만 알게 되어도 좋지 않을까 혼자 생각을 했습니다. 허수아비 만드는 일은 가끔 누리집에 올려놓겠습니다. 1학기 때는 학급 까페에만 글을 써서 올렸는데 2학기 부터는 누리집에도 올려놓으려고 합니다.

 

가을에는 선선해서 책 읽기도 좋습니다. 저는 이것저것 책을 많이 주문해 두었다가 시간 날 때마다 빼서 읽습니다. 지난 주에는 연구소에서 함께 읽는 이오덕 선생님 책도 읽고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쁠 때>라는 좀 오래된 소설도 읽었습니다. 이번주부터는 이윤옥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창씨 개명된 우리 풀꽃>과 소로의 <월든>을 읽고 있습니다. 지난 번 연수에서 이윤옥 선생님이 '개불알꽃'이 일본 말을 그대로 번역했다고 해서 좀 놀랐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까 대부분 들꽃 이름이 일본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쇠별꽃'같이 예쁜 풀꽃도 일본에서 왔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모르고 몰랐겠지만 알고 보니 우리 풀꽃도 일제 시대를 어렵게 건너온 모양입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여기 물골안에 들어온지 일곱 해가 되었습니다. 전세였지만 아내, 아이들과 함께 삶터를 옮긴지도 네 해 반이 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2년마다 늘 집을 옮기면서 떠돌아다녔는데, 이제는 좀 뿌리를 내리고 싶었습니다. 이곳 물골안에 와서는 지난해부터 마을 드림비(마을사람이 되었다고 내는 돈입니다.)도 내고, 터도 얻어서 집을 지으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올 봄부터 집 짓는 준비를 하다가 이제 며칠 후면 터파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집을 짓는 일이 늘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지난 겨울, 권정생 선생님 사셨던 빌뱅이 언덕에 갔다가 집을 짓지 말자 생각까지 했었지요. 이철수 선생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건 권정생 선생님이니까 그렇게 산 거고, 우리는 또 우리대로 살아야 하지 않나 말씀을 하셔서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욕심을 내어도 되겠구나 싶었지요.

<월든> 책은 자꾸 욕심을 내는 마음을 좀 누그려뜨리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소로는 그 책에서 자꾸만 물어봅니다. "원주민은 적은 비용 덕분에 제 집을 갖고 사는데 소위 문명인이라는 우리는 그 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없어 남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지 않은가?"하며 묻고 또 "우리는 늘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애쓸 뿐, 적은 것에 만족하는 법은 배우려 하지 않을까?" 묻습니다. 저는 대답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이 책은 조금 천천히 읽으려고 합니다. 다 읽을 때쯤 집을 다 짓게 될 것 같습니다.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았는데 글이 또 길어졌습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인데도 선생님들께 글을 쓰려면 술술 풀어질 때가 많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욕심일 때가 있는데 지금 저에게 그런 것 같습니다. 주위 선생님 몇 분이 너무 길어서 읽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 편지에 부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아이들과 재미나게 가을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2015년 9월 8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1. 지난 번 편지에 말씀드렸던 겨살이(겨레말을 살리는 이들) 모꼬지는 10월 17일부터 상주에 있는 푸른누리에서 열립니다.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18일(일) 아침 먹고 헤어집니다. 물론 전날 집으로 돌아가도 됩니다. 그때 우리 모임 선생님들이 가봐도 되냐고 물었더니, 좋은 일이라고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혹시 한 번 가보시고 싶으신 분은 저에게 연락처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2. 진현 선생님의 문자 받으셨지요? 이번주에 <어린이와 함께 여는 국어교육> 가을호가 나옵니다. 못 받으신 분은 간사님께 전화를 주세요. 혹시 주위에 선생님과 뜻을 함께 하실 분이 계시면 우리 모임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새롭게 회원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은 오래된 잡지와 지난 연수 자료집이 조금 남았으니 함께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쓰는 칼럼이 있습니다. 교실 아이들 이야기를 쓰기로 했는데 이번에는 편집장 말을 안 듣고 한자 병기 이야기를 썼습니다. 한 명이라도 그 이야기를 알아야겠다 싶어서 답답한 마음에 쓴 글입니다. 우리 모임 누리집에도 오늘 오후에 올려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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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니(수원진현) 2015.09.08 15:49
    음.... 긁적긁적... 제 욕심은 끝이 없는것 같아 부끄럽군요...
  • ?
    땅감 2015.09.15 13:10
    진현 선생님, 아직 계간지가 오지 않았습니다. 혹시 받으셨나요? 오늘 사무실에 전화해보니, 오늘이나 내일쯤 오게 될 것 같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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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니(수원진현) 2015.09.15 15:07
    전 지난주에 받았습니다.
  • ?
    땅감 2015.09.16 15:31
    저도 어제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자료회원에게 아직 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오늘 작업해서 발송한다고 합니다. 자료회원님들께는 따로 문자를 드렸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연영 간사님께 들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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