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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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제 9월도 절반이나 지났습니다.

지난 주에 편지를 쓸 때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가면 차갑다고 썼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추워서 긴팔 운동복을 하나 더 걸치고 집을 나섭니다. 학교 가는 오솔길에서 할머니들을 많이 만납니다. 가방을 메고 다니면서 산밤을 줍느라 그렇습니다. 도토리도 많이 떨어지는데 학교 거의 다오면 돗자리에 내다 말리는 집들이 보입니다. 그렇게 물골안의 가을이 깊어집니다.

지난 번 편지에서 "선생님들은 가을을 어떻게 맞이하고 계신가요?"하고 물었습니다.

몇 분 선생님들께서 시간을 내어 답을 주셨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니시는 선생님께서 반갑다고 연락을 주셨고, 학교에 바람개비를 달았다고 알려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을 읽고 있다고 책을 알려주신 분도 있습니다.

편지를 읽으니까 선생님들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내리막 오솔길로 페달을 밟으며 달려가는 선생님 모습도 떠오르고, 혼자 책을 읽으며 게으름과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는 어떤 선생님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빌뱅이 언덕을 다녀오셨다는 선생님 편지를 읽고는 툇마루도 없는 그곳 집이 떠올랐습니다.

다들 멀리 있지만 이렇게 편지를 나누다보면 삶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주말에는 충청도 영동을 다녀왔습니다. 갈 때는 3시간 정도 걸렸는데 올 때는 여섯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거기서 후배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오늘은 그 후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라서 가물가물하지만, 그때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군대를 마치고 학교에 돌아와보니, 마음을 붙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선배들은 다들 졸업을 해서 어디론가 흩어지고, 후배들은 저와는 다른 것들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학교 안에 모임을 만들고 후배들을 모아서 이런저런 일을 했습니다. 공장 앞에서 신문도 돌리고, 집회가 있으면 가서 구호도 외치고, 여기 저기 대자보를 써서 붙였습니다.

근처에 마산창원 공단과 양산 공단, 울산공단이 있어서 그쪽 노동조합하시는 분들과 만나서 공부도 하고 선거가 있으면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1학년 후배들도 모임에 들어와서 함께 일을 했는데 무슨 조직 사건이 나서 1학년 후배 두 명이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감옥에 갔던 후배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그 후배는 그때 감옥에 갔다가 나와서 다른 대학에 갔는데 거기서도 국보법으로 감옥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졸업도 못하고 서울 근처에서 컴퓨터 파는 일을 한다고 하더니, 고향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 기술대학에 가서 페인트칠 하는 것을 배우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부산교대에서 다시 학생으로 받아준다고 해서 지난 해 졸업을 하고 올해 발령을 받았습니다. 친구들보다 15년 늦게 발령을 받았지요.

지난 겨울, 졸업한다고 내가 사는 곳으로 다니러 와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디에 가서 선생님이 되더라도 뜻 있는 곳에서 다시 만나 함께 하자고 했습니다. 그때 선배 잘못 만나서 질러 갈 길을 돌아돌아 간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내내 빚을 진 것 같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혼자 차를 몰고 내려가는데 그때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수배가 떨어져서 형사들 몰래 학교를 빠져나올 때 떨렸던 일, 밤기차를 타고 수원에 있는 아는 선배에게 맡기도 돌아온 일이 생각났습니다. 모르는 집에 있는 것이 갑갑했던지 며칠 만에 내려왔다가 그날 자취방 앞에서 잡혀갔지요. 대공분실에 면회를 갔더니 수사하는 과장이 '니가 김강수냐고, 조심하라'고 했던 것도 생각나고, 법원 앞에서 구호 외치다가 민변에 있던 여자 변호사가 짜증 냈던 일, 구치소로 면회를 갔던 일도 생각납니다.

부산 구치소에서 혼자 버스 타고 오는데 후배가 한 말 때문에 한 없이 쓸쓸해졌던 일도 생각이 납니다. 대학시절에는 시를 쓰기도 했는데 그날 돌아오면서 썼던 시가 있어서 찾아보았습니다. '봄'이라는 시입니다.

 

오동나무에 물이 오르고 있다
눈 부신 것들
중간고사가 시작되기 전 구속된 후배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사람들은 결심한 듯 싹뚝.
생각을 잘라버렸다
가지 사이로 부실한 바람이 불어왔다

어린 것들은 자주 빛을 잃었지만
행여 눈부신 희망을 가졌던가 우리
여기저기 터지는 최루가스 피해 달아나고
정면으로 날아와 꽂히는 날카로운 나뭇가지
희망은 때로 벼랑처럼 까마득하고
구멍이 숭숭 뚧힌 두꺼운 유리벽 속에서
후배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투쟁!
투쟁이라고 어린 주먹을 들어보였다

아아 마음만으로 벼랑을 건널 것인가

 

 

영동에 있는 결혼식장은 작았습니다. 결혼식 내내 뒷구석에 서있다가 사진도 찍고 3층에 가서 갈비탕도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를 낳고 돌잔치를 하게 되면 다시 보자고 했습니다. 여기까지 온 길을 돌아보니 까마득합니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 그때 했던 말들, 어디에서 희망을 보았는지 세상을 뚫고 나가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그 젊음들이 생각났습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눈물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때 일을 쓰다가 보니, 지금 내 모습도 어떤가 싶습니다. 꿈도 없고 열정도 없이 사는 건 아닌지, 손톱만한 가진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이대로 늙어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길게 쓰고 말았습니다. 이만 줄여야 하겠습니다.

선생님들 삶에서 가장 빛나던 때는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아무런 댓가없이 사람을 사랑한 때는 언제였는지, 마음속에 희망을 품었던 적은 없었는지, 지금은 무엇이 두려운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가을밤이 깊어갈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모임이 있습니다. 마치고 술 한 잔 나누면서 그런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라도 들어줄 수 있는 동무들이 거기에 있을 것 같습니다.

 

2014년 9월 15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1. 가을호 책은 다 받으셨나요? 아직 저는 받지 못했습니다. 지난 주에 부쳤다고 하는데... 생각난 김에 연락을 해봐야 하겠습니다. 혹시 받지 못한 분들은 연영 간사님께 연락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2. 겨울호 부록은 모든 회원들이 함께 만들기로 했습니다. 좋아하는 동화나 그림책을 한두 줄 정도로 추천해 주시면 좋겠다고 했는데 많이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혹시 나누고 싶은 시도 있으면 제목만이라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편집을 맡으신 진현 선생님께서 올해는 겨울호를 일찍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올 겨울호 부록이 내년 봄, 교실에서 읽을 책을 정할 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부탁드립니다.

 

3. 어떻게 하는지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문자로 보내셔도 되고, 누리집에 올리셔도 되고, 메일로 보내셔도 됩니다. 마음에 들어왔던 책 제목과 추천하는 말 한 줄 정도를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열 권 넘게 보내주셔도 됩니다. 아... 선생님 이름과 학교 이름도 넣어주셔야 합니다. 선생님 이름으로 추천되는 것이니까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보리방구 조수택(만국기 소년 중)/유은실 - 혼자서 밥을 먹을 때 쓸쓸했다는 제자 승민이가 생각난다.(수동초 김강수)"

 

  • ?
    마니(수원진현) 2015.09.15 15:07
    가을 하늘이 파랗습니다. 선생님 글을 읽다가 마음이 울컥 합니다. 20년전에 참 가진 것이 없어도 열정과 패기가 있었더랬지요. 지금은?? 지금은 40대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있다고 할까요? 지금 이 시간도 빛나는 시간이 되도록 만들어가야겠어요. 오늘 우리 학교 근무하는 연구부장님께 계간지 한권을 선물로 드렸더니 바로 정회원 가입하신다고 연락이 왔답니다. 워낙 유능하고 뛰어난 선생님이라 우리 모임에 함께 하신다기에 아주 기뻤습니다. 함께 만드는 부록은 수원모임은 모아서 한꺼번에 올리겠습니다.
  • ?
    마니(수원진현) 2015.09.15 15:15
    한가지 더. 함께 만드는 부록 자료는 어디에 올릴까요? 자료마당에 올리려니 이미 올라간 자료도 많아서 나중에 모으기가 힘들것 같은데요.
  • ?
    땅감 2015.09.16 15:30
    그러게 말입니다. 따로 자료실을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간사님께 여쭈어 보겠습니다.
  • ?
    관리자 2015.09.16 16:27
    자료마당에 '함께 만드는 부록' 게시판을 더 만들어놓았습니다.
    진현 선생님이 올리신 글은 제가 읆겨놓았어요.
  • ?
    땅감 2015.09.17 10:31
    고맙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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