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을 다녀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한산초등학교를 다녀왔다. 오늘은 더구나 운동회날. 일반 학교와 별로 다른 게 없다던 남한산초등학교의 운동회.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무대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던 오늘은 남한산초등학교 학부모들의 잔치이기도 했다. 시골학교의 소박한 운동회와 정말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러나 진짜 다른 건, 학교 구성원 모두가 함께 준비하는 운동회라는 것.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 운동회 종목을 정하고 학부모의 도움과 참여, 교사들의 알찬 준비로 하루 종일 치르는 운동회라는 것. 너무도 당연한 이 과정이 우리네 일반학교에서는 드물게 보게 되는 풍경이 돼버렸다. 우리가 진짜 바라는 학교는 대단한 게 아닌데, 당연한 것이 달라보이고 크게 보이는 세상은 분명 문제가 있지 않은가.
올해 국어교과모임을 하면서 선생님들은 남한산초등학교를 방문하고 싶어 했다. 다행히 내가 주선할 수 있는 처지여서 오늘로 날을 잡을 수 있었다. 오늘 가기 전에 '남한산초등학교 이야기'라는 책도 읽었던 선생님들의 기대는 매우 컸다. 그 기대만큼 평소 그대로를 읽어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남한산초등학교를 너댓번 찾았지만, 교사와 아이들의 실천결과를 이만큼 꼼꼼히 챙겨보긴 처음이었다. 모임 선생님들 덕분에 좀 더 제대로 남한산초등학교를 읽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학교가 교사들의 사적인 이야기로 채우는 친목의 공간이 아닌 아이들의 교육과 성장을 위한 공적인 이야기가 가득한 공간이 어떤 모습이가 하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수업을 이야기 하고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고민하고 생각을 나누고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과정. 눈에 드러나는 학교행사로 넘쳐나는 혁신학교가 아닌, 일상의 삶을 교육적 삶으로 바꿔내는 과정. 이런 상식에 기초한 학교가 남한산초등학교였다. 물론, 남한산도 많은 문제와 갈등과 반목, 긴장과 두려움을 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학교라는 공간을 구성원의 이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남한산초등학교로 산다는 것이 매우 힘들고 부담스러운 것임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들의 모습에서 내가 딛고 있는 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가야 할 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다분히 정치적인 구호 '혁신'의 무게에 짓눌려 정작 내가 만들어가야 할 '학교'와 '아이'들의 모습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았다.
뜬금없이 무턱대고 찾겠다는 조금은 무리한 부탁에도 흔쾌히 맞아준 두 사람이 나는 고맙다. 운동회 진행으로 바쁜 상황에서도 모임선생님들의 방문을 신경 써 준 윤승용선생님. 운동회라는 행사로 주민과 면장, 졸업생과 가족의 방문으로 기관장 노릇하느라 바빴던 김영주교장선생님. 특히 김영주교장선생님은 그 바쁜 와중에도 잠시 짬을 내 직접 모임선생님들을 교장실로 초대해 주셨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모임선생님과 김영주교장의 질문과 응답이 오가는 분위기는 매우 따뜻했다. 새로 지은 남한산초등학교의 도서실을 둘러 보는 것으로 1박 2일의 모든 일정을 마친 모임선생님들은 저마다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고 인상이 깊었다는 말은 건넨다. 이제 다시 우리가 사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이 남한산초등학교 못지 않는 곳이 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은 깨닫지 않았을까.
아이들로부터 출발해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교사들의 실천과 나눔. 그 평범한 삶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은 대단한 삶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잊고 살았고 저만치 미루고 때로는 버렸던 삶일 뿐이다. 그 삶들을 이제 다시 우리 곁으로 끌어오기만 하면 된다. 이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해야하는 일이고 천천히 가야하는 길이다. 정치적인 구호와 관행이 아닌 내 곁에서 만들고 나눠야 할 흔들리지 않는 실천이자 삶이어야 한다. 문득 도종환의 '처음 가는 길'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그렇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