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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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편지를 쓰기 시작한 뒤로 일주일이 더 빨리 돌아옵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렇게 편지 보내는 일이 저에게 부담이 되었던가 봅니다. 여름까지만 해도 답장을 오면 저도 다시 답을 쓰기도 했는데 한 달 전부터는 그것도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이야기가 오고가지 않아서 그저 나혼자만 떠드는 꼴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주부터 조금 바빴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1박2일로 우리모임의 지역대표자 회의와 겨살이 모꼬지가 한꺼번에 상주 푸른누리에서 열립니다. 거기 갈 준비를 하느라 바빴고, 또 지난 주부터 집을 짓게 되어서 학교 끝나면 그 일을 합니다. 학교도 밀린 일이 많아서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챙기려니, 글 쓸 시간을 내기 힘듭니다.

 저만 그런 것도 아닌데 엄살을 부리네요.

 가을이 더 깊어졌습니다. 추워서 이번주부터는 자전거를 타지 않기로 했습니다. 차를 타고 학교 가는데 빨리 가서 좋지만 주위를 잘 둘러보지 않게 됩니다. 도중에 멈춰서지도 않고 하늘도, 땅도 보지 않습니다. 내내 앞만 보고 갑니다. 그러고보니 속도는 원래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쪽으로만 눈길을 보내게 합니다. 하늘도 땅도, 사람도 보지 않고 그저 길만 보게 합니다.

 

 학교에서도 앞만 보고 갈 때가 많습니다.

 지난 주부터 우리반 아이 하나 때문에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타일러도 안 듣고 안 된다고, 다른 아이와 다르게 할 수는 없다고 고개를 저어도 제 하고 싶은대로 고집을 부립니다. 1학년 입학하자마자 오빠들 이름에 오르내리더니 이제는 선생님들도 모두 그 아이를 잘 압니다. 귀엽기도 하고 야단치면 눈물도 찔끔거리고 당돌하기도 하고,.... 그런 아이 이야기입니다. 다른 이름이 있는데 그냥 보미라고 부릅시다.

 내내 우리 선생님이 가장 좋다고 내 옆에서만 밥을 먹으려고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그러고 싶은데 보미만 그렇게 하면 공평하지 않아서 일부러 다른 자리에 가기도 하고, 야단도 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습니다. 2학기 되고 나서부터는 선생님 옆에 앉는다고 고집부리지 않아서 이제는 좀 나아졌나 생각도 했습니다.

 지난 주에 밥 먹다가 뜬금없이 이제는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이제는 6학년 오빠가 좋다고 했습니다. 누가 좋냐고 했더니 팝콘오빠가 좋다고 했습니다. 1학년에게 팝콘을 많이 나눠줘서 붙은 별명입니다. 가끔 점심시간에 교실 앞에 와서 1학년과 놀아주기도 합니다. 그 오빠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니까요. 저는 좀 섭섭하다고 말해주었지요.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급식실에서 밥을 먹는데 다른 반과 섞이면 못 먹고 서있는 아이들이 있을까봐 반별로 선생님들이 자리를 정해줍니다 먼저 들어온 반부터 정합니다. 그날은 우리반이 먼저 받아서 자리에 앉아야 하는데 보미가 자꾸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저러다가는 지나가는 아이에게 부딪혀서 식판을 엎을까봐 걱정이 됩니다. "보미야, 얼른 자리에 앉아. 왜그래?" 하면서 다그치고 있는데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쌩하니 다른 곳으로 갑니다.

 보니까 방금 팝콘오빠가 자리에 앉으니까 보미가 그 옆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6학년 다른 아이들이 비키라고 뭐라 하고, 나는 나대로 1학년 자리로 가자고 손을 끄는데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이러다가는 진짜 식판을 엎겠다 싶어서 6학년 아이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보미는 6학년 팝콘오빠 옆에서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보미얼굴이 얼마나 환해졌는지 모릅니다. 6학년 오빠는 동무들 앞에서 놀림을 당할까봐 내내 아무 말도 못하고, 보미는 신이나서 밥도 잘 먹습니다.

 전교생이 100명 남짓이라 점심시간 끝나고 온 학교에 소문이 났습니다. 그런 일은 금세 퍼지기도 하고, 부풀려지기도 합니다. 보미가 좋아한다더라, 둘이 같이 밥을 먹었다더라, 양치질을 하고 돌아오니 2학년 선생님이 말해주더군요.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돈다고 했습니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저도 그랬지요. 그런데 우리반 여자 아이 몇몇의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보미만 앉고싶은데 앉는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집에 갈 시간이 다 되었으니 내일 이야기하자면서 돌려보냈습니다.

 오늘 아침 보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서 선생님이 도저히 방법을 못 찾겠으니까 좋은 생각이 있는 아이들은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선생님, 보미를 유치원에 전학 보내도록 해요."

 "야, 그건 너무 심하잖아."

 "또 그러면 운동장에 세워 두세요."

 "학교에서 벌을 주거나 때리면 선생님 잡혀간다."

 "그냥 자기가 앉고 싶은대로 해요."

 "그래도 괜찮겠니? 보미만 그래도 괜찮겠어."

 

 그래도 된다는 아이가 있고, 그러면 절대 안된다는 아이도 있어서 2~3분 정도 마주이야기를 한 뒤 손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아이들이 보미만 특별히 봐주면 안 된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맞는 말이지요. 그렇게 되면 보미는 다른 친구들과 더 어울리기 어렵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이들과 어울리고 학교의 당당한 1학년이 되기 위해선 참아야 하는 것도 있으니까요.

 손 든 아이들 수를 세고 있는데 갑자기 보미가 손바닥으로 자기 이마를 때렸습니다. 몇 대고 자꾸 때리는 것입니다.

 아.. 그때 생각을 하면 또 마음이 급해집니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막 더듬으면서 1학년짜리 조그만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했습니다.

 교실 안이 얼어붙었습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보미도 내 서슬에 질려서 그 자리에 멈추었습니다. 저도 제가 놀라서 멈추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했지만 온 몸에 맥이 풀렸습니다. 아이들도 건성으로 공부하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이가 제 몸을 때리도록 몰아간 것이 누굴까? 교실에서 그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굴까? 아무리 내가 좋은 뜻으로 그랬다 하더라도 내 잘못을 덥기 어려웠습니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했지 아이의 답답한 마음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속도 때문에 앞만 보고 갔으니까요. 어제 다른 아이들이 불만 가진 것을 보면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해서 풀어야겠다는 생각만 한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미, 그 아이가 집에 갈 때 집에 간다고 나에게 웃으며 인사를 해준 것입니다. 참 고마운 아이입니다.

 살다보면 많은 일을 하게 됩니다. 떠밀려 할 때도 있고 뜻이 굳세어서 꼭 해내고 싶은 일도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그런저런 일이 있어서 앞만 보고 갈 때가 있습니다. 다른 곳은 모르지만 학교에서는 그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지난 번 편지에 썼던 것처럼 손을 잡고 걸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아이들 마음을 살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보미의 첫사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날 것입니다. 여덟 살 아이의 사랑이 다 그러지 않을까 혼자 생각을 해봅니다. 사랑 때문에 집을 나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급식실에서 옆에 앉고 싶다는 것뿐이었는데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볼 걸 생각도 듭니다.

 한 발짝만 물러서 보면 별 것 아닌 일이 될 때가 있습니다. 속도 때문에 앞 만 보고 가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내일은 아이들과 함께 학교 뒤 새로 생긴 놀이터에 나들이를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곳 놀이터에 가만히 앉아서 아이들 노는 것을 한참동안 지켜보고 싶습니다.

 

2015년 10월 21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1. 어제 써둔 편지인데 시간이 없어서 부치지 못했습니다. 몇 명씩 나눠야 해서 부치는 데도 제법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까 이 편지 속 이야기는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비 온 뒤 더 땅이 더 굳어진다고 오늘은 아이들과 잘 지내었습니다. 오늘 6학년이 졸업 여행을 떠나서 식당에서 앉는 문제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둘째 시간에는 학교 뒤 새로 생긴 놀이터에 가서 놀기도 했습니다. 편안해서 다행입니다.

 

2. 편지에 쓴 것 처럼 이번주 토요일 11시에 상주 푸른누리에서 겨레를 살리는 이들 모임을 합니다. 사람 드문 깊은 산골입니다. 아직 겨울은 멀었고 적당히 바람이 불어주면 서로 마음을 나누기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마음이 가는 분이 계시면 저에게 연락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3. 계간지 부록 자료로 아이들과 수업을 해본 분이 계시면 저에게 연락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계간지에 간단하게 아이들 한 결과를 실으려고 합니다. 올해는 작은 교재를 만들고 그것으로 아이를 만나는 일을 부지런히 하려고 합니다.

 오직 하나의 교과서로 온나라 모든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바꾸기 위해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명을 하고 시위를 하는 것, 잘못 만들었다고 비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교실마다 다른 빛깔의 교과서로 공부를 하고 그것을 서로 나누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실천하다 보면 국정의 두꺼운 벽도 무너질 것입니다. 온나라 선생님들이 이지에듀를 돌려서 시간표를 짜는 것도, 3월이면 시간 수를 맞추느라 애를 먹는 일도, 하나의 평가지로 시험을 보는 일도, 온나라 모든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는 일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 ?
    빛나 2015.10.21 10:15
    나도 1확년 4년 하면서 무척 싸웠다.
    마치 일학년이 된 것 같더라.
    고 녀석들 참,
  • ?
    땅감 2015.10.26 21:18
    그러게 말입니다. 산다는 것이 다 그렇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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