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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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비바람이 불더니 또 땡볕입니다.

너무 더워서 요즘은 중간놀이시간 마치고 곧장 에어컨을 틉니다. 나 혼자라면 어떻게든 참아보겠는데 아이들이 자꾸 틀어달라고 조릅니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이야기 해보지만 아이들 등쌀에 지고 맙니다. 이 더위에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저는 며칠 전 일요일에는 반가운 비가 와서 깻모를 심었습니다. 제가 세 들어 사는 주인집 아주머니 아저씨께서 농사를 지으시는데 그분들 따라가서 난생 처음 심어보았습니다. 허리를 굽혀 한참 심다보면 바람이 불고, 또 한참 심다보면 비가 와서 시원하게 일을 했습니다. 비 맞으면서 밭일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좋은 줄 몰랐습니다. 아주머니도 오랜만에 비가 와서 일하기 좋다고 했습니다. 서너 시간 깻모를 심고 나서 라면을 끓여 함께 나눠먹습니다. 일하고 먹는 밥이라 맛이 있었습니다.

심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더니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다리가 당겨서 계간을 오르기 힘들었습니다. 아내는 온몸이 아프다고 하고 저도 어제 아침까지 걷기가 어려웠습니다. 안 하던 일을 하고 안 쓰던 힘을 써서 그런 것 같습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일을 하면서 농사꾼들이 바보같다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아침부터 깻모 심고 밭매고, 가을 되면 깨 베어서, 털고, 씻어서, 말려서, 기름을 짠다면서 누가 바보같이 그렇게 하냐고 그냥 사먹고 말지, 농사꾼들이 바보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참 염치도 없이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지난 해 가을에 아주머니께 들깨 한 병 얻어 먹었는데 그게 새삼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방학이라 다들 성적표를 쓰고 방학 계획서 같은 것을 만드느라 바쁘실 것 같습니다. 저도 교실에 앉아서 아이들 모습을 떠올리면서 한 자 한 자 더디게 적어나가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아이들 생각만 하다보면 잊고 있었던 일도 생각이 나고 아이가 한 말도 생각이 나서 새록새록 합니다. 오늘은 아이들 이야기를 한 가지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학교에는 제 대학 후배 한 명이 6학년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대학후배이기도 하고, 전교조 후배이기도 하고, 국어모임 후배이기도 하면서 그것 말고도 얽히고 설킨 이야기가 많아서 무척 가까운 사이입니다.

1학년 우리반에 올 때가 있는데 1학년이니까 귀엽다고 말고 걸고 농담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친해지고 나니까 우리반 아이들도 식당에서 밥 먹을 때 6학년 선생님을 만나면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반가워 합니다. 어느날 우리반 아이 하나가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물어봤습니다.

"선생님, 6학년 선생님 머리카락이 왜 저렇게 하얗지요? 몇 살이에요?" 묻길래,

"응, 6학년 선생님이 젊어서 고생도 많이 했고, 나이가 많아. 150살 넘었을껄."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6학년 선생님한테 가서 귓속말로 속닥속닥 하다고 돌아오더니 말합니다.

"선생님, 6학년 선생님 진짜 나이는요. 놀라지 마세요. 151살이래요."

다른 아이들도 옆에서 듣고 있다가 진짜냐고, 거짓말 아니냐고 말다툼을 하면서 한 바탕 소란을 피웠지요. 그 뒤로 6학년 선생님 나이는 151살이 되었습니다. 아이들 하는 걸 가만히 보니까 6학년 선생님이 하도 정색을 하고 말하니까 믿는 아이도 있는 것 같고, 긴가민가 헷갈리는 아이도 있고, 믿지 않는 아이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봄날을 다 보내고 여름도 한참 깊어졌습니다. 이번주 월요일 6학년 선생님이 새까맣게 염색을 하고 학교에 왔습니다.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보더니 모두 손가락질을 하면서 6학년 선생님 머리를 가리킵니다. 젋어졌다고 하면서 왜 저렇게 되었나 말들이 많습니다.

밥 먹을 때 누군가 나에게 물어보길래, 젊어지는 샘물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축령산 어디 가면 젊어지는 샘물이 있는데 6학년 선생님은 10년에 한 번씩 거기 가서 먹고 온다고, 그러면 머리카락이 새까매지고 젊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새침한 여자아이들은 염색했다고, 선생님이 거짓말한다고 하고, 남자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저도 본적 있다고 하면서 같이 거짓말을 합니다.

다음날입니다. 어제지요. 점심 먹고 나서 여자 아이 4명이 교실에서 놀고 있다가 젊어지는 샘물 있으면 나도 먹을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먹고 싶은데 6학년 선생님이 어디 있는지 안 가르쳐준다고 엄살을 피웠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엄마 아빠 갖다주고 싶냐고 물었지요. 세 명의 아이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마지막 한 명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합니다. 할아버지가 아프니까 할아버지 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보니, 할아버지가 큰 병원에서 무언가 진단을 받았다고 들은 게 생각이 났습니다. 아이에게는 절실한 일이 되어버린 것 같은데, 거짓말이라고 알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샘물 어디 있는지 알아본다고후다닥 6학년 교실로 뛰어갔습니다.

그러고는 잊고 있다가 저녁에 그 선생님을 만나서 물어봤습니다. 아이들 안 왔냐고? 뭐라고 대답했냐고 했지요.

"축령산 어디에 있는데 보통 사람 눈에는 안 보이고, 100살 넘어야 눈에 보인다고 했어요." 말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더 조르지 않고 교실로 돌아왔나 봅니다. 할아버지 병도 낫게 하고 싶지만 100살이 넘어야 한다니까 기다리기로 한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시간 날 때마다 옛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디서 주어들은 이야기나 서정오 선생님의 책에 있는 이야기를 막 섞어서 대충 이야기를 합니다. 어쩔 때는 이야기판이 잘 굴러가서 아이들이 꼼짝 않고 듣기도 하지만, 어쩔 때는 이 이야기를 했는데 저 이야기로 흘러갔다가 갈피를 잡기 힘들 때쯤 서둘러 끝을 내기도 합니다.

이야기도 잘 못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이야기가 살아있는 교실을 만들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억지로 귀 기울이게 하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판이 교실에 살아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어설픈 이야기지만 아이들이 이야기 속에 푹 빠져서 놀다보면 마음에 맺힌 것도 저절로 풀어지고, 어울려 살아간다는 게 뭔지, 남을 돕는다는 게 뭔지, 사람답게 산다는 게 뭔지 저절로 알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참 좋겠는데, 우리반에서 이야기판이 제대로 펼쳐진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대로 이야기판을 펼치려면 모두가 평등해야 하고 모두가 자유로워야 하는데 저는 자꾸 저만 쳐다보라고 할 때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그러면 어쩌냐고 닥달하고 선생님 말 안 들으면 유치원 보낸다고 협박하는 교실에서 제대로 이야기판이 펼쳐질 수가 없지요. 어쩌다 제 기분이 내켜서 엣이야기를 하지만,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그뿐입니다.

그런데 어제 그 6학년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번에야 제대로 이야기판을 펼쳤구나 싶었습니다. 재미가 없는 이야기면 금세 끝이 나고 말았을텐데 이 이야기는 3월부터 여름이 깊어지도록 이어졌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6학년 선생님, 우리반 아이들, 우리반 아이의 할아버지까지, 사람들의 어려움, 바램 같은 것이 있습니다. 언제 끝날 지도 모르고, 현실과 상상을 넘어다니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니 살아간다는 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 곧 방학입니다. 이번 학기, 선생님께서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면서 살아오셨나요? 행복한 이야기, 웃긴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만 있다면 참 좋겠지만, 슬픈 이야기, 눈물 나는 이야기, 쓸쓸한 이야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산다는 게 그럴테니 말입니다. 그 이야기들이 서로 나누고 살면 좋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7월 15일 수요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1. 어떤 분이 편지를 보내시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답장을 받으면 힘이 난다고 하니까 힘내라고 편지를 쓰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그 말이 선생님들께 내 편지를 봐달라 조르는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것에서도 얼른 벗어나야 하는데 사람이 못 되다 보니 확인을 받고 싶은 모양입니다. 이제는 답장 안 써주셔도 됩니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읽어줄 것이라 생각도 들고, 그러지 않아도 편지를 쓰면서 내가 즐거워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간 답장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2. 누리집 문을 연지 보름이 지났지만 거기서 선생님들을 많이 뵙지 못하였습니다. 여기 저기 교실의 이야기들이 넘쳐나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냥 그 생각도 접고, 이제는 가끔 반가운 사람들을 한 번씩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거기에 우리반 교실 이야기 가끔 올리겠습니다.주소는 http://www.urimal.or.kr/ 입니다.

 

3. 여름 배움터 신청하신 분이 2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돌림병 때문에 못하게 되는 줄 알았는데 많은 분이 오시겠다고 합니다. 이제는 신청을 받지 않고 연수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방도 정하고, 연수비도 받고 자료집도 만들고, 강사에게 연락도 하고,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늘 때가 되면 하는 일인데도 신이 나고 새롭습니다. 거기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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