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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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한 달이 넘은 것 같습니다.

방학 때도 한 통 정도는 써서 보내드리려고 했는데, 편지 쓰는 것도 방학 때는 좀 쉬고 싶었나 봅니다.

딱 날짜를 정해놓고 쓰는 편지도 아닌데 싶어서 하루 이틀 미루다가 한 달이 넘어버렸습니다. 그 사이 저는 남쪽에 있는 고향도 갔다가 강산모임 여름배움터(연수)도 다녀오고, 강원도 고성 바닷가도 다녀오고 <이오덕김수업교육연구소> 식구들과 이오덕 학교가 있는 고든박골에 다녀왔습니다. 고든박골에서 이오덕 선생님 무덤에 가서 인사도 올리고, 바로 옆 무너미에 있는 이오덕 선생님 살 던 곳도 돌아보았습니다.

그곳 학교에서는 5시 30분에 일어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우리도 그때 일어났는데, 새벽 안개 속에서 아이들이 염소, 닭, 거위, 오리의 밥을 주고 있었습니다. 큰 아이들은 낫을 들고 다 따먹은 옥수수 자루를 베고, 작은 아이들은 우리 안으로 넣어주었지요. 그러면 염소나 닭 같은 것이 소리를 내면서 우우 몰려왔다가 몰려가곤 했습니다. 학교 같은 느낌이 안들고 함께 살아가는 마을 같아 보여서 낯설었습니다.

사람은 모여서 사는 모둠살이를 해야 하고 모둠 살이를 하려면 함께 일도 하고, 함께 노래도 부르고, 함께 놀기도 해야 할 겁니다. 그렇게 너나없이 함께 하는 곳에 배움이 있고 나눔이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내가 다니는 학교, 내가 배우고 가르친 교육에서는 배우는 사람이 따로 있고, 가르치는 사람이 딱딱 정해져 있어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앞장서서 나오고, 다른 일들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게 나쁘다, 좋다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태 그런 학교에서만 살았고, 그런 것이 학교라고 머릿속에 굳어져 있어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드리려고요. 학교를 바꾸는 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하는 일도 배우고 가르치는 일 속에 길이 있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이오덕 선생님, 김수업 선생님 책을 읽으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일보다 삶을 나누는 것이 먼저다 생각을 했지만 내가 살고 있는 교실을 떠올리면 여전히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앞장을 서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그분들이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듯 모를 듯 했지요.

그러다가 이오덕학교에서 딱 한 번, 새벽일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세게 잡아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좋은 것을 보거나 들어도 좀체 놀라지 않는데 딱 한 번 본 것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서 저도 제가 좀 놀랐습니다. 이게 삶을 나누는 게 아닐까? 일과 놀이를 앞장서서 함께 가야지 거기서 노래도 나오고 이야기도 나오지 않나 언뜻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과 놀이가 앞장서려면 '함께'가 되어야 합니다. 일도 함께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놀이도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살다보면 '함께'가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일을 시키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 일도 하는 사람만 하고, 놀 때 함께 놀지 않고 노는 놀이도 따로 정해져있고, 노는 사람도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다들 놀 때 놀지 못하고, 일할 때 일하지 못하니까 '따돌림'이 생겨납니다.

내가 살고 있는 교실도, 학교도 '함께'보다는 '따돌림'이 더 많습니다. 학교에 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아이들 이야기는 따돌리고 듣지 않을 때가 많고, 선생들 이야기도 듣지 않고 따돌릴 때가 많습니다. 교장 선생님이나 교감 선생님 같은 분들 몇 명이서 일을 만들어서 시킬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선생도 그 일을 하고, 아이들도 그 일을 합니다. 시키는 사람과 하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안됩니다. 민주주의는 함께 일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생겨나니까요?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했습니다. 우리반 아이 하나는 방학을 시로 써보라니까 이렇게 썼습니다.

"이런! / (1학년 박민준)

여름 방학이 끝났다. / 나는 방학으로 돌아가고 싶다. / 공부가 싫다."

또 다른 아이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여름방학(1학년 이연경)

나는 방학 때 집에만 있었다. / 엄마는 회사에 가고 / 나는 혼자다. / 완전 좋았다."

학교라는 곳에 들어온지 겨우 다섯달 하고 방학을 했는데 벌써 공부가 싫어서 방학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썼습니다. 봄에는 학교 오는 게 재미있다고 하더니 방학 때 쉬어보니까 그게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연경이 시를 읽고도 놀랐습니다. 아무도 없어서 쓸쓸했다고 쓸 줄 알았는데 '완전 좋았다'고 썼습니다. 연경이도 나처럼 자유가 그리웠나 봅니다. 연경이에게 혼자 있어서 왜 좋냐고 물었더니, 시키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다고 합니다. 집에서도 시키는 사람 따로 있고, 하는 사람이 따로 있구나 싶었습니다.

 

2학기 첫 수놀이 시간입니다. 2학기 때 어떻게 배울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몇몇 아이가 손을 들고 이렇게 저렇게 공부를 하자 하면 내가 칠판에 씁니다. 다 이야기한 다음 나온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더 나눈 다음에 좋은 것을 손으로 들어서 손을 많이 들은 것대로 공부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잘 지키고 저도 정한대로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어려운 것은 하지 말고 쉬운 것을 하자, 재미있는 놀이를 하면서 수공부를 하자, 가끔씩 운동장에 나가서 공부를 하자, 먼저 공부가 끝난 아이들은 돌아다니면서 못한 아이들을 가르쳐주자, 모르는 것이 있으면 동무들에게 물어보자, 수놀이 만화책이나 그림책도 보자... 물론 저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교과공부에 위계가 있으니까 차근차근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고, 공부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놀이처럼 공부를 하자는 것이고, 장소를 달리해서 직접 찾아가서 공부를 하자는 말이고, 서로 나누면서 공부를 해야 더 깊이 배운다는 말이고, 이야기로 공부를 하면 더 잘 된다는 이야기였지요.

그런데 저는 그런 이야기를 저만 알고 있고 아이들은 잘 모른다고 생각을 합니다. 말로는 '아이들에게 배운다' '학습자 중심 수업'이라고 하면서 선생인 내가 아이들보다 잘났다는 생각이 뼈속 깊이 들어가 있어서그렇게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오랜만에 1학년 아이들을 맡았습니다. 1학년 아이들이 뭘 아나, 우습게 보는 마음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뒤 아이들이 한 말을 받아 쓰면서 다시 깨달았습니다. 아이들도 다 알고 있구나! 1학년이지만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교실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나도 알고 있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서 정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공부에서 따돌림 당하지 않고 함께 해나갈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교실에서도 나 혼자 보다는 '함께'가 훨씬 편하고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반 아이 하나가 지점토로 뭐 만들고 싶다고 지점토 하나 주면 안 되냐고 하길래, 평소와 달리 통 크게 '그래라!' 했습니다. 지점토 가져 가는 아이 뒤에다 대고 야, **야, 넌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선생님이 좋니? 물었습니다. 아이가 씩 웃으면서 선생님이 좋다고 합니다. 그 옆에 있는 아이 하나도 "나도 그런데~"합니다. 거짓말인줄 알지만 기분이 좋아집니다.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된 것 같습니다. 국어책에 보면 상황에 맞는 인사말 하기가 있는데 우리반 아이들은 상황에 맞는 거짓말하기도 참 잘합니다. 선생님이 거짓말을 잘해서 그런가 봅니다.

오늘 새벽에는 좀 추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코가 맹맹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올 때 내리막길을 갈 때는 반팔 옷을 잎어서 그런지 팔뚝이 차가워졌습니다. 가을일가 봅니다. 십 몇 년 전에 우리반 아이 하나가 쓴 시가 생각납니다. 그때도 1학년 담임이었습니다. "가을 / 이제 긴팔을 입는다. / 가을이다." 며칠 만 있으면 긴팔을 입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쯤 다시 편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2015년 8월 28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1. 윤승용 선생님 편지 받았지요? '함께' 만드는 부록 이야기입니다. 마음에 남은 동화나 동시를 한 줄로 써서 누리집에 남겨주시든지, 윤승용 선생님 메일이나 전화문자로 답장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함께 하려고 합니다. 벌써 한 권을 생각해 두었습니다.

"<청소녀 백과 사전>사랑은 먹을 수 없으니까 젓가락 과자를 주는 것이라고 우리반 준이가 이야기했다. 그 말이 좋았다. - 수동초 김강수 - "

이렇게 한 줄 정도 쓰면 되겠습니다. 그냥 내가 읽은 책을 한 줄 정도로 모임 선생님들께 권한다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수원모임 선생님들이 애를 써준 덕분에 이번 가을호도 다음주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부록이 두 개나 됩니다. 아이들과 나눌 거리로 삼아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한 부에 500원인데 교실 아이들과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3. '겨레말 살리는 이들'이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2년전부터 한두 달 만에 모여서 우리말 사전 만드는 일을 이야기합니다. 김수업, 박문희, 주중식, 최인호, 최한실, 이윤옥, 안상수 일곱 분 선생님이 뜻을 세워서 시작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갈 길이 멀고 어렵습니다. 뜻을 세운 분들이 일을 끝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꿈같은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꿈같은 일이지만 꿈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 일을 붙잡고 싶습니다. 함께 하실 분들이 있으면 메일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10월에 상주에서 모꼬지를 하는데 그때 와서 보시고 할지 말지 정하시면 좋겠습니다.

 

4. 9월부터 겨울연수 준비를 합니다. 이번에는 광주의 김형도 선생님이 맡아서 하게 됩니다. 아직 장가도 못간 젊은 선생님입니다. 처음 연수를 준비하는 것이라 많이 떨릴 것 같습니다. 좋은 연수가 될 수 있도록 의견이 있으시면 광주 김형도 선생님이나 제 메일로 주시면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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