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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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월의 막날입니다. 아침부터 날이 덥습니다.

학교에서도 에어컨을 청소한다고 합니다. 여름채비입니다. 이런 날은 운동장 등나무 아래서 공부하면 시원할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물골안 산골입니다. 낮에는 찌는 듯 덥다가도 밤이 되면 싸늘한 바람이 붑니다. 초저녁부터 모기가 있지만 해가 지고 나면 찬바람 때문에 모기가 덤비지 않습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아이들 씻기고 국수를 삶아서 먹고 빨래 널고 설거지도 합니다. 시간이 남아서 아이와 장기도 한 판 두었습니다. 아홉 시가 되어서 아이들더러 자라고 하고 아내와 함께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마당에 의자를 내고 거기 앉아서 책을 읽습니다. 마당에 전깃불이 없어서 마루불빛에 비춰가며 읽습니다. 연하게 비치는 불빛도 좋고 목덜미를 지나가는 밤바람도 좋습니다. 깡통 맥주를 한 잔씩 마셨습니다.

윗집에서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집짓기 전 제가 살던 곳입니다. 거기에 같은 학교 박길훈 선생님이 이사를 왔습니다. 20년 가까이 사귄 후배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 물골안 마을에 들어가서 함께 살자고 왔습니다.

밤하늘에 울리는 노래가 좋아서 거기도 맥주 한 깡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노래값이라고 했지요. 그 선생님이 몇 곡을 더 불러주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김광석 노래도 들려옵니다. 노래 덕분에 ‘사라바’라는 일본 소설을 다 읽었습니다.

문득 마루를 보니 우리집 큰 아이가 나와서 보고 있습니다. 물 마시러 왔다고 합니다. 알았다고 들어가서 자라고 하는데 아이가 한 마디 합니다. 우리는 일찍 자라고 하면서 어른들만 책 본다고 치사하답니다. 아이를 돌려세우고 의자에 앉아보니 참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바람도 좋고, 불빛도 좋고 노랫소리고 좋은데 어른들만 책을 읽으니 그렇습니다. 치사합니다.

 

지난주에는 아이들 시를 모아서 <개구리 놀이터>라는 작은 문집을 내었습니다. 올 들어 세 번째입니다. 가끔씩 아이들이 쓴 글을 모아서 내고, 1년이 지나면 그걸 다시 묶어서 책을 냅니다. 책 이름은 매년 3월에 아이들이 정합니다. 저에게는 보물 같은 책입니다.

이번에 쓴 글 중에 ‘약속’이라는 글감이 들어있습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거기서 글감을 찾습니다.

아이들이 글을 쓰고 나면 곧장 옮겨 적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서 그렇습니다. 그런 때는 글쓰기 공책이 제 책상 위에 쌓입니다. 왜 빨리 안 하냐고 아무도 재촉하지 않으니 뒷전으로 밀릴 때가 많습니다. 한 달치를 꼬박 모았다가 지난 주에 내어주었습니다.

아이들 시를 읽다보면 우리 어른들이 잘못한 것이 많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동하는 엄마가 텔레비전 보라고 해놓고 보고 있으면 씽크빅 시킨다고 썼습니다. 엄마가 약속해놓고 자기가 어긴다고 합니다. 화인이 엄마는 “야! 너 왜 약속 안지켜!” 하면서 어린이날 2천원 준다고 한 것도 안 주고, 2학년 때 과자 사준다는 것도 1년 동안 지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1시간 동안 컴퓨터 하라고 해놓고 30분만 되면 시간 다 됐다고 끄라는 부모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약속을 어길 때가 많습니다. 지난번에 방방이장 간다고 철떡같이 약속해놓고 어겼습니다. 그런 일이 하도 많아서 아이들은 그냥 참고 맙니다.

얼마 전 신문을 봤더니 가족 중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사람 1위가 아빠라고 합니다. 2위는 엄마입니다. 약속 어겨서 믿을 수 없는 사람 1,2위를 다투는 사람들이 아빠, 엄마이니 그런 사람들과 사는 아이들 마음이 어떨까 싶습니다. 3위는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선생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따로 있는데 내 마음대로 정해놓고 약속이라고 지키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억지로 지키는 약속도 내 마음대로 깨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저 같은 어른들입니다. 힘이 있다고 목소리 크다고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치사합니다.

아이들이 좀 더 자라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어른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함께 살지만 아이들은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믿기 힘듭니다. 말도 섞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른을 닮은 어른이 되어갑니다.

작은 문집을 낼 때마다 앞에다 무슨 말이든 한 쪽 정도 써줍니다. 이번에도 썼습니다.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자기들이 쓴 시를 읽어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어릴 적 마음으로 돌아가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들보다 훨씬 착한 어른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2016년 5월 막날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어제 두 권짜리 책을 다 읽었습니다. 읽고 나서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쓴 편지도 그게 뭔가 싶었지요. 온나라 선생님들께 드리는 글이었지만 제가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되돌아보게 되고 얼핏 길이 엿보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들이 보내주신 답장에 힘을 내기도 했습니다.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2. 이번 주에 여름 배움터(연수) 게시판이 열리게 될 것 같습니다. 준비가 되는대로 곧장 문자를 드리겠습니다. 분과는 많이 늘었지만 분과 정원이 줄어들었습니다. 동무들과 함께 듣고 싶으신 분들은 빨리 정해서 신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홀로 오시면 외로울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밥 먹을 때도 누가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혼자서 먹어야 합니다. 그럼 참 쓸쓸합니다.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동무와 손잡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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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 2016.05.31 12:36
    널리 알려서 온나람 선생님들이 함께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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