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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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더 더워집니다. 물기도 많아서 이런 날은 짜증이 난다고 합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이 내뿜는 숨도 덥습니다. 선풍기를 틀어보지만 쓰레기만 이리저리 날립니다.

 여름에는 함께 있는 것이 힘듭니다. 운동장에서 들어온 아이들은 땀에 흠뻑 젖습니다. 그 아이들이 가까이 오려고 하면 몸이 저절로 물러서게 됩니다. 떨어져있으면 그나마 견딜 만합니다. 참, 선생으로 할 말이 아닙니다.

 겨울에는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있으면 따뜻해서 좋았습니다. 가까이 와서 따뜻한 말을 해주면 더 좋았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난 교실은 쓸쓸하고 추웠지요. 그때는 아이들 하나하나가 소중했습니다. 내가 진짜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인 것 같아서 그것도 좋았습니다.

 날이 더워지면서 아이들도 귀찮고 공부도 귀찮아집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힘에 부칩니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낮잠이라도 자고 싶습니다.

 아이들도 비슷한 마음인가 봅니다. 자주 다툽니다. 별 것 아닌데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냅니다. 공부시간에도 버럭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몸에 불덩이가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할 수 없어서 어제 오후에는 에어컨을 켰습니다. 그제서야 가만히 앉아서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에어컨이 없을 때는 어떻게 가르쳤나 싶습니다. 제가 봐도 제가 한심합니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쓰려고 합니다.

 아침에 학교에 왔더니 경수가 주차장까지 나와서는 내 가방을 들어준다고 합니다.  

 가방을 맡기도 올라가는데 5학년 도근이를 이릅니다. 도근이가 승혜 자전거를 훔쳐서 타다가 버렸다고 합니다. 마침 승혜 아버님이 보셔서 자전거를 도로 찾았다고 하길래 다행이라고 했지요. 나중에 도근이를 불러서 한 번 물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부르러 갈 것도 없이 도근이가 우리 교실에 왔습니다. 경수가 자전거를 몰래 가져가서 타다가 어딘가에 버렸다는 것입니다. 옆에 있던 경수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경수가 맞나 봅니다.

 둘을 데리고 교무실로 내려갔습니다. 하나하나 들어보고 나서 왜 남한테 뒤집어 씌우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경수 표정이 굳어집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번에는 2학년 아이 가방에 있는 피카츄 카드를 가져가서 돌려준 적이 있고, 얼마 전에는 반 아이 가방에서 돈 7천원을 가져간 적도 있습니다. 두 번 다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우기다가 들통이 났습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을 합니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지요.

 7천원 가지고 지나가는 아이들 다 사주는 바람에 돌려줄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도 아셔야겠다 싶어 전화를 했습니다. 참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전화를 받는 할머니도 그랬습니다. 이런 통화를 하게 만든 경수가 미워서 그때도 소리를 질렀던 것 같습니다.

 오늘 또 경수할머니께 전화 걸 생각을 하니 참을 수가 없습니다. 5학년 도근이를 돌려보내고 나서 막 아무 말이나 합니다. ‘제발 생각 좀 하고 살자. 할머니가 남한테 고개 숙이면서 비는 걸 어떻게 볼래? 할머니가 무슨 죄가 있냐? 애물단지가 따로 없다. 나도 이번에는 할머니한테 전화 못한다. 할머니 불쌍해서 나는 못 한다......’ 뭐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이 고됩니다. 탁 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습니다. 경수는 벌써부터 주르르 눈물을 흘립니다. 마음이 잦아들기까지 한참 기다렸다가 경수에게 말합니다.

 

“경수야, 이번에는 할머니한테 말하지 말자. 선생님하고 같이 가서 사과하자. 선생님이 잘못했다고 빌게 너도 빌어라. 나중에 혹시 할머니가 알게 되면 그때는 솔직하게 말해드리자.”

 

 경수가 울기를 멈추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경수와 함께 운동장을 가로질러서 승혜네 집으로 갔습니다. 승혜 아버지께서 가게 문을 닫아놓고 안 보입니다. 전화를 해보니 어디 멀리 나가있다고 합니다. 괜찮다고, 아이들이 그럴 수 있다고 하시는데 나중에 다시 사과드리겠다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경수 손을 잡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아이가 외로울 것 같아서 손을 잡고 왔습니다. 경수 손이 작습니다. 아이는 아이입니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믿어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올해 초 첫 번째 편지를 쓸 때 경수 이야기를 썼습니다. 정을 주면 되겠지, 마음을 쏟으면 달라지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제가 달라집니다.

 내가 뭘 잘 해서 경수를 달라지게 하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열 살을 살았는데 기껏 한 해 같이 사는 선생님이 아이를 어떻게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도 힘이 드는 일입니다. 나쁘게 보지 않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손을 잡아 주는 일도 때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때마다 경수 편을 들어주고 싶어도 이래서 되는 일인가 싶어서 머뭇거립니다. 그렇게 살아갑니다. 경수는 제가 바꾸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저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더 많습니다. 함께 살아가니까 아픈 일도 슬픈 일도 있습니다. 화도 내고 웃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사는 것이 경수와 나의 이야기입니다. 좋은 결말이 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냥 이 이야기가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 훗날에도 잊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경수도 그렇겠지요. 저를 나쁘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해주면 더 좋겠습니다.

 

2016년 6월 14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1. 연수 접수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신청을 했습니다. 국어모임 선생님들께는 벌써 문자로 연락을 드렸는데, 지난번에 강산모임 연수에 오신 분들께는 오늘 오후에 알려드릴 것 같습니다. 엑셀 파일로 문자를 보내야 하는데 자꾸 문제가 생겨서 그렇습니다.

오늘 오후에 문자를 보내게 되면 또 많은 분들이 신청을 하실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분과를 더 늘이고 신청할 수 있는 자리를 더 줄였습니다. 혹시 원하는 분과가 따로 있으면 빨리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연수 게시판은 http://goo.gl/forms/0J07iYxAY226Tnj93 입니다.

 

 

2. 연수 때문에 한 번 더 알려드립니다. 늘 홀로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홀로 오게 되면 밥을 먹을 때나 쉬는 시간에 외로울 수 있습니다. 어쩔 때는 홀로 오신 몇 분이 짝이 되기도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오실 때 옆에 계신 분들 중 한 분 정도 함께 가자가 손을 내밀면 좋겠습니다.

 

3. 지난 주말에는 참실대회가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거기 머물면서 온작품읽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강사들이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한 다음 오신 분들이 돌아가면서 또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신 선생님들 이야기를 듣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거기 오신 한 분이 제 편지를 읽고 궁금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읽고 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4. 제 편지에 나오는 아이들 이름은 바꾼 것이 많습니다. 우리 학교에는 경수도 없고 도근이도 없습니다. 아이 이름을 꼭 알 까닭은 없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다만 이름도 없이 편지를 쓰기가 어려워서 아무 이름이나 붙입니다. 헤아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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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바기나 2016.06.16 12:41
    지난 3주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울어서 저를 힘들게 하는 아이가 떠오르는 글입니다.
    오늘은 6월 들어 처음으로 울지 않은 날이지만 내일은 또 울지도 모르지요.
    달라지기를 바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 주기도 힘이 드는 시간들...
    선생님 말씀처럼 그러면서 살아갑니다. 2016년.
    저에게 많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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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감 2016.06.28 11:48
    같은 뜻을 안고 같은 일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저도 선생님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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