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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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오이가 많이 자랐습니다. 우리반 농부 아이들에게 매일매일 조금씩 따오라고 해서 아이들과 나눠먹습니다. 방금 따와서 시원하고 아삭합니다. 오이를 먹으면서 아이들과 공부를 합니다. 받침소리도 배우고, 센입천장소리도 배웁니다.

말본을 가르칠 때 우리반 아이들은 부지런히 공부합니다. 퐁당법칙도 익히고, 띄어쓰기 법칙도 줄줄 외웁니다. 홑홀소리 말이 줄임말이 될 때 겹홀소리가 되는 것도 그렇구나 깨달으며 배웁니다. 일기를 쓰거나 글을 쓸 때 자주 틀리는 것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퐁당법칙 공부를 하다가 한 아이가 ‘같이’를 <가티>라고 읽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것도 가르쳐야 하나 싶다가 아이들에게 한참 설명을 합니다. 혀로 여린입천장과 센 입천장을 대어보라고 하고 느낌이 어떤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가티’로 읽었을 때와 ‘가치’로 읽었을 때 어떤 게 쉬운지도 해봅니다. 혀로 말의 느낌을 알아보거나 혀로 말소리의 속도를 알아보는 일이 재미있나 봅니다. 구개음화 예시 낱말 몇 가지를 더 알려줍니다. 남쪽 사람들이 성질이 급하고 게을러서 그렇게 소리 내는 것 같다고 했더니 아! 고개를 끄덕입니다.

좀체 집중하지 못하는 경수(아참, 처음 보는 선생님들을 위해 알려드립니다. 경수라는 이름은 그냥 제가 붙인 것입니다.)도 열심히 따라하면서 몸으로 글자를 익힙니다. 경수는 요즘 공부시간에도 일어나서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글을 쓸 때도 많고, 매주 함께 읽는 온작품읽기 책도 잘 읽습니다. 아이들과 다투지도 않고 누가 뭐라고 해도 그냥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지난주부터 그렇습니다. 경수는 지난주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약을 먹고 나서 경수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너무 달라져서 할머니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경수가 먹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공부 잘하게 되고 선생님이나 할머니께 칭찬 받을 수 있다고 하니까 그랬답니다. 공부시간이 되어서 서둘러 끊었지만 뒤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3월에 가정방문을 갔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생긴 대로 살아가면 좋겠다면서 약을 먹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지요. 할머니께서도 그러겠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보건실에서 무료 상담이 있어서 받았습니다. 공짜로 병원 검사도 해준다고 해서 할머니께서 데려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약을 처방해주었습니다.

경수는 욕을 하지 않는 아이, 소리를 지르거나 거칠게 행동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말도 차분하게 하고, 정말 달라진 것은 공부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동무들과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저는 조마조마하면서 경수를 지켜봅니다. 저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약을 끊으면 다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계속 약을 먹어야 한다고 듣기도 했습니다. 병을 낫게 하는 약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의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어쩐지 꺼리는 마음이 생깁니다.

경수가 했던 행동과 말이 병이었나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심하긴 했지만 그렇게 말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경수는 병원에 다녀와서 약을 먹습니다. 약을 먹으면서 달라집니다. 달라져서 제가 편해지기도 하고 동무들도 편해집니다. 경수는 어쩐지 잘 모르겠습니다. 할머니 말씀으론 경수가 그러기를 원했다고 했습니다.

경수의 말과 행동, 경수의 마음은 경수가 날 때부터 타고 난 것입니다. 또 여태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경수의 삶이 담긴 것입니다. 경수는 처음부터 욕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참기 힘든 것이 경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욕을 하면서 삭혀야 했고, 거친 행동으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제 경수는 작은 일에 화를 내지 않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좋아졌다고 해야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안타깝습니다.

제가 잘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쏟았더라면 싶은 마음이 듭니다. 조금 더 다정하게 말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몸은 편해졌는데 마음이 불편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2016년 6월 28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연수 신청을 계속 받고 있습니다. 이번 주가 지나고 나면 200명이 넘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십니다. 2박3일 잠을 자면서 하기 때문에 어려운데도 이렇게 많은 선생님들이 함께 모이자고 합니다.

매주 화요일에 연구소에 모여서 어떻게 하면 오신 분들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삶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무언가 희망에 대해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온작품읽기든, 주제수업, 이야기, 쓰기, 예술이든 무엇이 되었건 이야깃거리를 놓고 삶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우리 홈페이지를 지난 해에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씩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점점 줄어들어서 이젠 잘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보다는 거기 있는 자료가 더 재미있고, 쓸모가 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홈페이지는 자료를 모아놓기에 좋고, 이야기를 나누려면 페이스북이 좋다고 했습니다. 지난주부터 페이스북을 시작했습니다. 이런저런 글을 올리기도 하고 나누기도 합니다. 홈페이지보다 편합니다.

거기서 모임을 만들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잘 하는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초등국어교과모임을 페이스북에 만들려고 합니다. 편지도 보내고 난 뒤 복사해서 그곳에 다시 올려놓으려고 합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은 들어오셔서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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