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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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그렇게 되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메신저 창을 보고 깨닫습니다. 방학이 되면 이것저것 내라는 것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잊어버릴까봐 달력수첩에 적어둡니다.

며칠 전부터는 틈틈이 아이들 성적을 매깁니다. 아이들을 3단계로 나누어서 무리를 짓습니다. 그렇게 무리를 짓고 나면 하나하나 살아있는 아이들은 사라지고 부족하고 못난 것이 보이게 됩니다. 선생이 이래도 되나 싶지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선생이라면 누구나 해야 되는 모양입니다.

그게 다 끝나고 나면 말로 써줍니다. 이때부터가 시간이 많이 듭니다. 그래도 그건 재미가 있습니다.

교과 시간에 무엇을 공부하였는지 하나하나 써줍니다. 마을 산책을 재미나게 했다는 이야기, 영화 만들 때 감독을 맡았다는 이야기, 글씨가 많이 반듯해졌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때 썼던 시가 마음에 닿았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동무들과 있었던 일도 씁니다. 아침에 오면 책가방 던지고 축구하러 나간다는 이야기, 땀에 흠뻑 젖었다는 이야기도 씁니다. 지난번에 선생님이 혼내서 미안했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선생님 가방을 들어준 이야기, 동무들 공부를 도와준 이야기까지 쓰다보면 길어집니다. 어쩔 때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저장이 안 될 때도 있었습니다.

처음 그랬을 때는 왜 그런지 몰라서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요즘에는 그럴 때 한 줄씩 덜어내고 나서 저장을 합니다.

주저리주저리 쓰면서 아이를 다시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런 일이 있었지’ 생각합니다. 그럼 그 아이가 다시 살아납니다. 그때 장면이 떠오르고 나와 아이가 끈으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가 삶을 흉내 내는 것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써나가다가 어떤 아이에게서 딱 막힐 때가 있습니다. 교실에서 있었던 장면을 떠올려서 한 줄 쓰고, 함께 나눈 이야기도 한 줄 쓰고 가정방문 갔을 때 나눈 이야기 한 줄 쓰고 나면 더 쓸 것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답답합니다. 아이 공책도 뒤져서 이야기를 생각해내고, 다른 동무들에게 물어보면서 어째어째 다 쓰기는 하지만 미안합니다. 좁은 교실에서 반년을 함께 살았는데 몇 줄, 써줄 말이 없는 게 말이 되냐 싶습니다.

의미 있게 나눈 이야기라도 있으면 생각이 날 것이고 하다못해 야단이라도 쳤으면 떠오를 텐데....그 많은 공부시간들, 그 많던 쉬는 시간을 나는 뭐하며 보냈나 싶습니다. 아이가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를 걸어야 했습니다.

그저 별 탈 없으니 그냥 놔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쁘지는 않지만 무관심한 선생님이지요.

생각해보면 저의 어린 시절 선생님들도 비슷비슷했습니다. 나쁜 선생님은 아니었습니다. 저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지요. 바빴을 것입니다. 가끔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분도 계셨지만 그런 분은 몇 해 걸러 한 분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선생님과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뭐라고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저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3월... 선생님들께 편지를 보내면서 경수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아이의 마음을 더 살피면 안 될 것 같지만 그러겠다고 쓴 것 같습니다. 그 뒤로 몇 번인가 더 경수 이야기를 썼습니다. 경수에게는 그렇게 쓸 말이 많았는데 다른 아이에게는 성적표에 몇 줄 써주는 것조차 힘들어 합니다.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경수에게 마음이 더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조용하고 말이 없는, 말썽피우지 않는 아이들에게도 다가갔어야 했습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가끔씩 내 자리로 불러서 이야기도 나눠야 했지요. 같이 어울려 놀기라도 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시간이 나면 성적표에 이야기를 쓸 것입니다. 가끔 가다 막히기도 하겠지요. 막막한 기분이 될 것입니다. 그나마 아직 한 학기가 남았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내가 바뀔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막막함을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2016년 7월 12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지난 주말 연수를 신청한 분들이 200명을 넘어섰습니다. 오늘이 지나고 나면 더 많이 들어올 것입니다. 이번 주말에 연수신청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잘 때 방을 정하기로 해서 더 받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모임에서 몇 명 정도는 더 받을 수 있도록 기숙사 방을 정하고 난 뒤에도 몇 개 여분으로 더 빌려놓자고 말해봐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분이라도 더 와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에 강마을산마을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준비해야 할 것도 알려드리고 이야기도 나누면 좋겠다 싶어서 그렇습니다.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강마을산마을배움터’라고 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곳에 미리 읽고 오면 좋을 책도 올려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누군지 안내하는 말도 써놓으려 합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식단이나, 뒤풀이 방법, 연수 방법 같은 것도 미리 이야기해주시면 의논을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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