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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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할 때가 있습니다. 가을에는 그럴 때가 더 많습니다. 하늘이 궂고 비까지 내리면 한없이 쓸쓸해져서 온누리에 나 혼자만 있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지난 번 권정생 선생님 살았던 빌뱅이 언덕을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바람이 불고, 문풍지가 흔들리는 밤이면 얼마나 쓸쓸했을까?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 밤이면 이야기 나눌 동무가 그리웠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쓸쓸함을 동무들이 곁에 많을 때도 느낍니다. 오늘 우리반 지훈이가 그랬을 것 같습니다.

어제 1학년 선생님이 우리 교실로 올라왔습니다. 지운이가 1학년 아이를 때렸다고 했습니다. 때리지 말라고 하니까 미안하다면서 또 때렸다고 합니다. 순한 얼굴로 싱글거리던 아이였습니다. 1학년 선생님께는 잘 타이르겠다고 했습니다. 잊어버릴까봐 칠판에 적어두고 나중에 찬찬히 물어봐야겠다 마음을 먹었지요.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화요일 아침은 과학실로 가기 때문에 꽤나 바쁩니다. 과학실 가기 전에 하루 일정도 말해줘야 하고, 아이들과 이야기 나눈 것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려줘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도 그랬지요. 내 이야기만 짧게 하고 과학실 가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칠판에 적힌 것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바쁜 마음에 지운이 이야기는 한 마디도 듣지 않고 꾸짖기만 했습니다.

 

“아 맞다. 야! 이지운, 너 어제 1학년 때렸니 안 때렸니?”

“때렸어요.”

“어디서?”

“놀이터에서요.”

“형아가 동생 때려면 어떻게 하냐? 부끄럽지도 않냐?”

 

대답이 없습니다. 저는 아이가 뉘우치는 줄 알고, 한 마디 더 합니다.

 

“동무들하고 놀아. 1학년이랑 놀지 말고. 그래, 앞으로 또 그럴래 안 그럴래?”

“안 그럴게요.”

 

대답소리가 작습니다. 착한 아이이니 그쯤하면 다시는 안 그러겠다 싶었지요. 저는 아이들에게 과학책 챙겨서 가자고 서둘렀습니다. 과학실에 아이들을 데려나놓고 돌아오는데 과학 선생님이 우리반 아이 하나가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지운이입니다.

교실에 와보니, 지운이 눈이 빨개져서는 홀로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가만히 의자를 돌려서 마주 앉았습니다.

 

“왜 우니?”

“쓸쓸해서요.”

“왜 쓸쓸한데?”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요.”

“그 마음이 뭔데?”

“어제 걔가 먼저 반말을 했어요. ‘야, 덥벼봐.’ 했어요.”

 

그랬습니다. 교실에 동무들이 가득하고 선생님도 있는데 지운이는 쓸쓸해지고 말았습니다. 과학실에도 오지 않았지요. 아무도 지운이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자기 말만 하고 지운이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지요. 온누리에 홀로 있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지운이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1학년 선생님께 연락을 해서 때린 지운이도 잘못이지만 그 아이가 먼저 나쁜 말을 했다고, 잘 타일러 달라고 했습니다. 지운이가 옆에서 보고 있다고 이제야 마음이 조금 풀린다고 합니다. 다 풀리려면 5분 더 있어야 된다고 해서 그럼 더 있다가 과학실 가라고 했습니다. 5분 뒤, 지운이가 밝은 얼굴이 되어서 과학실로 갔습니다.

지운이는 초콜릿을 좋아합니다. 이마트 가는 날이면 내게 몇 시까지 거기서 만나자고 합니다. 킨더초콜릿을 사주겠다고 꼭 오라고 하는 아이입니다. 한 번도 가지는 않았지만 마음만으로 고맙습니다. 선생님을 동무처럼 아껴주는 아이이지요. 그래서 저도 동무처럼 장난을 걸기도 하고, 놀려먹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가끔씩 저는 나쁜 어른이 됩니다. 이야기도 듣지 않고 냅다 꾸짖습니다. 방금 전까지는 동무였는데 금세 어른이 되어서 내리 누르려 합니다.

배신입니다. 배신을 당한 지운이가 쓸쓸한 것은 당연합니다.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다가도 한 순간 헤어지자고 돌아선 애인 마음과 같을 겁니다. 저도 그럴 때가 있어서 지운이 마음이 헤아려졌습니다. 그 마음을 생각하니 저도 쓸쓸해지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오늘 종일토록 참 쓸쓸했습니다.”

“알고 있다. 축하한다.”

“축하한다고요? 무엇을 말입니까?”

“네가 하루 종일 쓸쓸했다는 사실을. 쓸쓸함도 너에게 온 손님이다.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여라.”

“어떻게 하는 것이 쓸쓸함을 잘 대접하는 겁니까?”

“쓸쓸한 만큼 쓸쓸하되, 그것을 떨쳐버리거나 움켜잡으려고 하지 말아라. 너에게 온 손님이니 때가 되면 떠날 것이다.”

 

이현주 선생님의 책을 몇 권 사서 보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글은 <지금도 쓸쓸하냐?>라는 책의 맨 앞에 나오는 글입니다. 저 글을 읽다가 쓸쓸함도 손님이라 때가 되면 떠날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지운이에게 읽어주고 싶었지요. 쓸쓸함이 떠나고 나면 기쁨이 오기도 하고, 뿌듯함이 찾아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것들도 손님이니 붙잡지 말아야지요. 그러고보면 사람 마음은 여러 손님들이 찾아오는 곳인가 봅니다. 텅 비워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손님들이 머물기 쉽게 말입니다.

오늘부터 가을인가 봅니다. 온통 안개가 끼어서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개가 걷히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가을이 찾아왔다고 몸이 느낍니다. 이만 줄입니다.

 

2016년 9월 6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국어모임 회장 노릇이 반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바쁩니다. 국어모임은 오랜 동안 많은 선생님이 모여서 새로운 교육의 길을 가자고 애를 씁니다. 온나라에서 재미난 이야기가 피어나고 넓게 퍼져갑니다. 더 넓게 퍼져서 함께 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교육의 새길을 열어보자고 손을 내밀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모임 이름이 국어교과에 머물러 있어서 미술이나 음악, 생태나 마을에 관심이 있는 선생님들을 머뭇거리게 합니다. 어떻게든 매듭을 풀고 싶습니다. 함께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도록 판을 펼치고 싶은데 혹시 좋은 생각 있으신 분들은 연락을 바랍니다.

가을에 있을 지역모임대표 모임에서 이야기를 더 나눠보려고 합니다.

 

이철수 선생님 댁에 갔을 때 <호아빈의 리본>이라는 모임에 가입했습니다. 매달 만원씩 회비를 내기로 했지요. 베트남에 아이들에게 학교도 지어주고 도서관도 지어준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예술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었다고 합니다. 전시회나 공연 수익금으로 학교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국어모임 회장을 맡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따뜻한 선생님들께 전해달라며 가입서를 주셨습니다. 혹시 함께 하실 분이 있으시면 연락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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