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조회 수 9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어릴 때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우리반 아이들이 쓴 글을 읽다가 되살아난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예전에는 교실에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새 학년을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나도 선생님께 이름이 불리지 않을 때가 많았지요. 집안이 넉넉하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힘이 세거나, 하다못해 말썽이라도 부리지 않으면 이름조차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저도 그저 그렇고 그런 아이였습니다.

 6학년이 되었지요.

 학교가 그렇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관심을 받기 보다는 동무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놀기 바빴고, 학교를 마치고 나면 학원에 가지 않은 동무들과 어울려 방방이를 타거나 전자오락실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한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옆반에 새로 전학을 온 아이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었지요. 엄마가 일찍 죽어서 새엄마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한 번도 말을 걸어보거나 놀아보지 못했지만 그냥 관심이 갔습니다. 못 사는 동네에 살았지만 늘 깔끔하게 입은 것도 좋았습니다.

 수학여행을 갔을 때는 그 아이에게 주려고 석고로 된 5백원짜리 강아지 인형을 사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요.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지요.

선생님은 이상한 벌을 주곤 했습니다. 다른 선생님은 잘못하면 때렸는데 그 선생님은 공부시간에 떠들거나 잘못한 일을 하면 복도에 나가서 무릎을 꿇게 했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다른 반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무릎 꿇은 아이들을 쳐다봤습니다. 부끄러웠을 겁니다.

 선생님 관심을 받는 아이들 무리가 있었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여자아이들이었지요. 그 아이들은 꿇어앉았다가도 쉬는 시간이 될 즈음이면 교실 문을 똑똑 두드리고는 선생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희들 한 대씩 맞고 들어가면 안 될까요?”

 

 선생님은 그러라고 하고, 손바닥을 한 대씩 때리는 것으로 벌을 대신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도 걸렸습니다. 선생님께서 잠깐 교무실 다녀온다고, 조용히 자습하라고 했습니다. 옆 짝꿍이 자꾸 장난을 걸 길래, 우당탕 장난 같은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저와 짝꿍은 복도에 나갔습니다.

 꿇어앉았지요. 자꾸 쉬는 시간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지나가다 보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아파트 사는 아이들처럼 매를 맞고 들어가면 안 되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싫었거든요. 집안이 넉넉하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힘이 센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이야기는 잘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비굴해지기 싫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때 선생님과 기싸움을 했던 것 같습니다.

 쉬는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보통은 다음 시간이 시작되면 안으로 부르곤 했던 선생님이 저희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음 시간도 꼬박 무릎을 꿇은 채 앉아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뻗대는 마음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그런 것도 없어졌지요. 제발 구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지요.

또 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옆반 아이들이 지나갔습니다. 아마 그 아이도 지나갔을 겁니다. 저를 보았겠지요. 참담했습니다.

 그 뒤에도 한두 번 더 쉬는 시간이 지나갔지요. 교실에서는 종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알림장을 쓰고, 아이들은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먼저 교실을 나왔습니다. 저희들을 보고도 어떻게 하라는 소리 없이 휙 지나가버렸습니다. 아이들도 뒤따라 우루루 나왔습니다. 4층 계단으로 내려가는 선생님 뒤에 대로 ‘개새끼’라고 욕을 했습니다. 막 울면서 소리를 질렀으니 선생님도 들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오지 않았고 저는 그대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억울했는지, 분했는지, 아쉬웠는지, 쓸쓸했는지... 어떤 느낌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줄줄 울었던 기억이 남았습니다. 물론 그 아이도 보았을 겁니다.

 저는 끝내 그 아이에게 강아지 인형을 주지 못했습니다.

 6학년을 졸업하기 전 그 아이는 전학을 갔습니다. 내가 살던 곳보다 더 변두리였지요. 거기는 아파트도 없고 논밭만 있는 곳이었습니다.

 가끔 그 아이와 그때 선생님, 그날의 내가 생각납니다. 그러면 쓸쓸한 마음이 되곤 합니다.

 편지를 쓰다가 쉬는 시간이 되어서 화장실을 가는데 지난 해 우리 반이었던 영경이를 만났습니다. 연경이가 말합니다.

 

“선생님, 현식이가 저 좋아해요.”

“어떻게 알아?”

“현식이가 지난 번 돌봄교실에서도 저보고 예쁘다고 했고요. 어제도 저 사랑한다고 했어요.”

“그래? 그럼 현식이한테 사랑이 뭔지 물어봐라.”

 

 연경이 표정이 묘합니다. 자랑하려고 얘기했는데 선생님이 못 알아먹어서 그런가 봅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다니. 딱 그런 표정입니다. 연경이가 가고 나서 옆에 있던 정근이가 또 말을 겁니다.

 

 

“선생님, 정근이가요 지난번에는 교빈이 좋아한다고 했어요.”

“그래, 그럼 현식이는 바람둥이구나.”

 

 정근이도 그냥 갑니다. 현식이가 거짓말을 해서 나쁘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바람둥이라고 해서 그런가봅니다.  정근이는 바람둥이, 그게 뭔가 하는 표정으로 교실로 갔습니다. 웃깁니다. 나중에 그게 뭔지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겠습니다. 바람둥이는 사랑이 자주 바뀌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주면 알아들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모를 수도 있습니다. 지나고 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되기 전, 그 선생님처럼 되지 말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지 않게 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을 때리기도 했고, 들어보지도 않고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동무들이 있는 자리에서 막 쏘아붙이기도 했지요. 그때 그 아이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할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라도 잘하자 마음을 먹습니다. 그것도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날마다 되돌리고 싶은 마음으로 삽니다. 이만 줄입니다.

 

2016년 9월 20일

물골안에서 김강수 아룀.

 

덧붙이는 말>

 

1. 제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건 우리반 아이의 글을 읽고 나서입니다. 한 아이가 맞은 일을 썼는데 “피하고 싶었고 무섭다”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그래놓고 저는 더 젊은 선생이었을 때 아이들 손바닥을 때렸습니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못할 일입니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그런 일을 생각하다 보니, 제 어릴 적 생각이 났습니다.

 

2. 삶말출판사에서 두 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박지희 선생님이 만든 첫 배움책입니다. 1학년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교실에서 실천한 것을 온나라 곳곳에 널리 퍼뜨리자고 출판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정회원 선생님들께 한 권씩 보내고, 나머지를 팔아서 다른 선생님이 실천한 책을 또 찍을 수 있는 돈만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생각처럼 일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선생님들이 있으니까요. 서로를 믿고 가다보면 그런 날이 저절로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꿈꿀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든든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이름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3 엄영숙 지역 모임 누리집(포털사이트)와 전국모 지역모임 링크는 안 되나요? 2 꽃희망 2017.09.09 140
82 윤승용 상상과 현실 만돌이 2017.09.07 104
81 장덕진 ♥ 광화문 1번가 - 먼저, 한글교육 개혁부터 장덕진 2017.07.14 122
80 윤승용 대발견 file 만돌이 2017.03.17 97
79 장덕진 ♥ 닿소리와 홀소리가 결혼해요.ㅎㅎ 장덕진 2017.03.04 170
78 김강수 6학년 온작품읽기 목록과 부모님 안내장 file 땅감 2017.03.03 272
77 진주형 누리집 건의사항 3 짠주 2017.03.01 96
» 김강수 선생님, 어릴 때 일입니다. 땅감 2016.09.20 98
75 김강수 선생님, 삶에서 꽃이 핍니다. 땅감 2016.09.13 79
74 김강수 선생님, 쓸쓸할 때가 있습니다. 땅감 2016.09.06 64
73 김강수 선생님, 이 막막함을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땅감 2016.07.12 103
72 진주형 저희학교 교사잡지 올려보아요...^^ 2 짠주 2016.07.07 145
71 김강수 선생님, 기가 막힙니다. 땅감 2016.07.05 98
70 김강수 선생님, 약을 먹는다고 합니다. 땅감 2016.06.28 75
69 김강수 선생님, 사과를 하러 갔습니다. 2 땅감 2016.06.14 78
68 김영주 꼰대 1 빛나 2016.06.09 75
67 김강수 선생님, 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땅감 2016.06.07 66
66 김강수 선생님, 어른들은 치사합니다. 1 땅감 2016.05.31 74
65 김영주 다시 혁신교육을 생각한다(창비교육) 2 빛나 2016.05.31 93
64 김강수 선생님,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 땅감 2016.05.25 9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모두보기
home
사랑방 이야기나누기
TOP